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처세아부는 다르다. 처세는 사회생활에서 자기도 좋고 상대방도 좋게 하는 기술이다. 그러나 아부는 자기만 살겠다는 생각이다. 처세는 예의를 동반한 기술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에 사회생활을 한다. 사회생활에서 자신을 위한 기술이다. 이것을 잘 사용하면 자기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민교회는 이민사회가 연결되어 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의 관계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의 입장에 있는 사람은 의 눈치를 봐야 한다. 그러다보니 이 교회를 다니면 이 교회를 나오게 된다. 이것을 우리는 쉽게 전도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기 위한 처세이다. 권력자가 나가는 교회에 사람들을 자리에 앉게 했다가 시끄러운 적이 있었다.
 
이민사회에서 소위 자로 끝이 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 개척교회를 나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많은 수가 대형교회에 출석을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에 당연함을 헌금을 교회에 드리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을 하든 아니하든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은 교회를 나가고 있다. 이것에 대한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교회는 재정이 있어야 한다. 그러다보니 안 되는 줄 알면서 묵인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지나쳐서 교회 안에 심각한 문제를 준다.
 
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구속하려 한다. 그리고 수를 모아 힘으로 세력으로 발전을 시킨다. 이것을 교회 안에서도 자랑을 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를 통제하려 한다. 교회의 대표인 목사마저도 눈에 벗어나면 당장 그날로 쫓겨나게 된다.
 
지금 이민교회 가운데 이 문제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회, 목사가 너무나 많다. 교회 안에서는 처세아부가 아니라 사랑으로 세워져야 한다.
 
교회는 십자가의 사랑의 도를 배워 실천하는 곳이다. 공동체의 모든 사람들은 서로 용서하며 섬기는 모임이다. 이 공동체를 세상의 유익을 위한 모임이라 생각을 하면 곤란하다. 간혹 교인들끼리 낙찰계라는 것을 한다. 이유인즉 목돈을 만들기 위함이라 한다.
 
만일 공동체 안에서 낙찰계가 깨지면 그 여파는 교회의 혼란으로 이어진다. 난리가 난다. 낙찰계가 깨졌는데 하나님의 이름과 예수님의 이름이 등장을 한다. 누가 교회 안에서 낙찰계 모임을 가지라고 했던 적이 이었는가? 가르침이 있었는가? 알면서 억지를 부리는 것이다.
 
그래서 목사는 교회 안에서 낙찰계 하지 말라고 외친다. 그러나 상관치 않는다. 그러한 자들은 교회 안에서 처세술이나 아부로 관계를 맺으려 하는 자들이다. 즉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는 종교도 이용할 수 있고,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가 오늘의 교회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초대교회에서도 일어났었다. 이러한 자들은 마음이 부패되었고 하나님의 말씀도 알지 못하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문제와 분쟁을 일으킨다.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딤전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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