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2013년 새해가 밝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모이면 하는 화제는 단연 경제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만큼 삶에 대한 위기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더 이상 바닥은 없다고 외쳤지만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 서민경제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의 체감이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신자들의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회법이 있다. 그런데 그 법의 성격이 하나님의 성품을 근거로 한 것이다. 사랑과 자비와 긍휼로 되어 있지만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에는 엄격한 진노가 있다.
 
모세를 통하여 주신 율법에는 하나님과 교제를 위한 제사법이 있고, 하나님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법이 있다. 사회법 속에는 가난한 사람들과 스스로 자기 생계를 해결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보호법이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공동체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고 모인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구원을 얻는 곳이면서 육적으로 굶주린 자들이 배를 채울 수 있는 곳이다. 즉 영육간에 생명을 공급하는 한다. 그런데 그동안 교회가 문화를 나누는 공간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같은 취미를 가진 자들이 모여서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공급하고 나누는 곳이 교회의 공동체이다. 그러니 주님이 세우신 교회 안에서는 생명에 관한 일에 늘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교회는 사람을 살리는 곳이다.
 
교회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이 있다. 성경말씀을 보면 넉넉한 자가 드리는 넉넉함으로 부족한 자의 부족을 보충한다고 하였다. 교회의 공동체는 이와 같은 윈리에서 움직인다. 세월이 흘러 넉넉한 자가 부족한 자의 자리에 있을 때에 반대로 넉넉한 자의 도움을 받아 균등하게 하기 위함이라 한다.
 
이와 같은 헌신과 나눔의 정신을 가지고 있으면 세상이 흔들려도 걱정할 것이 없다. 예수님의 공동체 안에 있는 자들은 늘 균등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교회는 예배의 형식과 규모에는 관심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건축과 문화시설에는 관심이 많았지만 산제사의 제물로서는 이해가 부족하였다. 예배를 통하여 생명을 공급받고 생명을 전하는 일이다. 교회는 영육간에 병든 자를 고치는 곳이다.
 
이 모든 일이 온전하게 시행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을 하여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순종할 수 없다.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는 순종하는 자들이 많은 곳이다. 그래서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하시고 우리에게 나타난 사랑을 깨닫기 전에는 순종과 헌신을 할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자가 교회에 중직자가 되면 교회로서의 기능을 할 수가 없다. 본인도 베풀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도 하지 못하게 막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직분자를 세울 때는 하나님 나라의 법을 잘 알아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법, 말씀으로 통치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2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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