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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빌 3:17) 사도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나를 본받으라 하고 있다. 그런데 교인들 가운데 바울과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처럼 믿음 생활을 하고 있는 자들을 눈여겨보라 한다. 나를 본받으라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울이 받은 하나님의 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기에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은혜를 따르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구원의 교리를 따라야 한다.   그런데 빌립보 교회 안에 바울의 가르침에 대항하는 자들이 있었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빌 3:18) 즉 율법주의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저들은 자기의 의와 육체의 자랑으로 하나님의 의를 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자들의 특징은 이웃을 비판하며 정죄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들이 모인 곳에는 다툼과 분쟁과 시기가 있다.   십자가의 사랑을 받은 자들은 자기를 자랑하지 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고전 13:4) 그래서 교회 안에 분쟁이 있는 것이다.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빌 4:2)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십자가의 사랑 이외에는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없으므로 우리들의 것으로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고전 8:2) 즉 나의 생각과 자랑으로 이웃을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사람의 육체 자랑으로는 으뜸이 됩니다. 그러한 그가 자기의 자랑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다 배설물로 여깁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십자가 사랑이란 자기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세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 3:20)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으면 하나님의 자녀이며 천국시민이 된다.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에 펼쳐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소망이 있다. 천국시민이 되었으면 이와 같은 믿음으로 인내하며 사랑으로 드러내야 한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날까지 십자가의 사랑으로 살라는 것이다.   사랑으로 산다고 함은 무엇인가? 하나님 앞에서나 이웃 앞에서 자신을 자랑하거나 유익을 구하지 않음을 말한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고전 13:4) 바리새인들은 자신을 자랑하며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저들을 행하여 독사의 자식들아 하며 질책을 하셨다. 자신을 자랑하는 자들은 아직도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는 자가 된다.   고린도교회에 자신을 자랑하는 자들이 많았다. 그래서 아무리 많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소리를 할지라도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되면 헛것이 된다는 것이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고전 13:1) 자신을 자랑하는 자들은 타인에게 배울 것이 없다. 그래서 조심하라 한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을 사랑으로 증명과 증거를 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싸우지 않고 오래 참습니다. 그리고 남을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습니다. 또한 이웃 앞에서 자신을 자랑하거나 드러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고전 13:4) 여러분! 하나님이 싫어하시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롬 14:1) 로마서 14장에서는 형제를 비판하지 말라 하면서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에 대하여 말씀한다. 그 당시에는 시장에 나오는 고기들은 로마 황제 앞에 제사를 드리고 나온 것이다. 그래서 먹을 수도 있고 먹지 않을 수도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믿음이 작은 자는 우상 앞에 드려졌던 것이라 하여 먹을 수 없다는 것이고, 믿음이 큰 자를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신이기에 다른 신은 없다고 하여 먹었던 것이다. 이것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 사람에게 믿음의 분량과 은사를 주신다. 믿음과 은사를 주시는 이유가 신자들이 부족함이 있기 때문이다. 성령의 은사는 여러 가지인데 각 사람에게 각 각 주셨다. 어떤 사람은 지식의 은사를 또 어떤 사람에게는 섬김의 은사를 주신 것이다. 그 사람의 주인께서 믿음을 세운다는 것을 알게 되면 남에 대하여 감히 비판을 할 수 없다.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롬 14:4) 이것에 대한 근본적임 믿음은 십자가의 사랑으로 판단하고 이해하여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찾아 오셨다. 그리고 모든 것을 간과하시고 사랑하여 주셨다. 이제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죄인들과 믿음이 작은 자를 대하여야 한다. 이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신자들이 왜 이웃을 정죄할까요? 그것은 나의 신앙이 정당함을 드러내어 상을 받으려는 심리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 앞과 교회 앞에 칭찬과 상을 받으려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믿음의 당당함을 하나님의 일을 정직과 진실함으로 하라 합니다. 이 말씀에 대하여 잘 설명하는 비유가 있습니다. 눅 15장에서 맏아들과 탕자의 비유를 통하여 알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슥 2:5) 스가랴 2장에서는 척량줄을 잡은 사람 비유가 나온다. 천사가 스가랴 선지자에게 환상을 보여 준다. 척량줄이라 함은 남 유다와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하여 메시아를 맞이할 준비를 말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다시 부흥시키어 성곽이 없는 성읍이 되면 사람과 가축이 많게 된다. “이르되 너는 달려가서 그 소년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예루살렘은 그 가운데 사람과 가축이 많으므로 성곽 없는 성읍이 될 것이라 하라”(슥 2:4) 그리고 그 성읍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여호와의 불기둥으로 보호와 안전함을 얻은 것과 같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슥 2:5)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지 못한 백성들에게 인도하심과 보호함을 약속하셨다. 만일 이방 사람들이 여호와의 백성들 건드리는 것은 여호와의 눈을 상하게 하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영광을 위하여 나를 너희를 노략한 여러 나라로 보내셨나니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슥 2:8) 이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과 재림으로 인하여 완성이 된다. 이 때에 받는 복은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이다. 그의 백성이 됨을 말한다. “그 날에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요 나는 네 가운데에 머물리라 네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네게 보내신 줄 알리라”(슥 2;11)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약속하신 것이 성취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도 확인이 됩니다. 세 하늘과 새 땅에 펼쳐졌을 때에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기를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계 21:7) 하셨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하심으로 인하여 이 모든 구원의 완성되게 됩니다.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슥 1:3) 스가랴는 제사장으로서 학개 선지자와 같은 시대의 사람이다. 학개 선지자는 백성들에게 성전 건축을 독려하였다면, 스가랴 선지자는 회개와 영적인 개혁을 촉구한다. 스가랴의 뜻은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 이다. 즉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는 것이다. 이전에 수많은 선지자들이 여호와의 율법을 외치고 그들의 조상들이 죽었다 할지라도 약속의 말씀은 변치 않는다 함을 말한다. 지금 본문의 시대적인 상황은 포로귀환으로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었고, 재건되는 성전은 솔로몬의 성전에 비하면 초라하기가 그지없다. 실망하고 있는 백성들에게 위로의 말씀과 약속을 하신다. 그러면서 여덟 개의 환상을 보여 준다.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의 환상을 통해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을 당하고 있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이 백성을 위하여 열심을 내고 계심을 말한다. 그리고 네 뿔과 대장장이 네 명의 비유가 있다. 이것은 대장장이가 네 뿔을 부셔 버린다. 네 뿔이라 함은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강대국을 말한다. 스가랴서에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 가장 많은 책이다. 결국에는 메시야가 오시므로 인하여 예루살렘과 유다가 회복이 되고 하나님 나라가 세워진다는 것이다.   이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된다.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 4:6)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전의 건축물이 화려하고 웅장하여야 여호와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닙니다. 비록 건물이 초라할지라도 여호와의 약속의 말씀을 지키면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기 옷에 평강을 두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기 옷에 평강을 두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 2:9) 이스라엘 백성들은 학개 선지자가 전한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성전을 재건한다. 성전을 재건하자 여호와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신다.   성전을 재건하면서 솔로몬 성전의 영광을 보았던 자들은 이전의 영광보다 부족함을 보고 실망을 하였다. “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학 2:3) 성전에는 여호와의 언약궤가 있었다. “내가 또 그 곳에 우리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그들과 세우신 바 여호와의 언약을 넣은 궤를 위하여 한 처소를 설치하였노라”(왕상 8:21) 그러나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부터 너희와 언약한 말과 함께하는 나의 영이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다.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학 2:5) 여기에서 말하는 성전은 메시야를 통하여 세워질 성전을 말한다. 즉 메시야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질 것을 말하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복이 임한다. “곡식 종자가 아직도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학 2:19)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들의 믿음 생활의 중심이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다가 보면 마음으로 깨달아 아멘의 고백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중심으로 살다가 학개 선지자의 외침에 순종을 합니다. 자기중심의 삶으로 자기를 만족 시킬 수 없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복으로 말미암아 충만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학 1:8) 남유다 사람들은 바벨론에 포로 잡혀갔다가 폐르시아 왕 고레스에 의해 예루살렘으로 귀환을 한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후, 이년이 지난 후에 성전재건을 하려 하였다. 그런데 성전 재건을 방해하는 사마리아 사람과 이웃 나라의 방해로 십육 년간이나 중단이 된다. 학개서는 이러한 배경을 갖고 시작이 된다. 포로에 돌아온 백성들은 여호와의 성전을 재건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자신들의 집은 좋은 나무로 잘 지었다.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학 1:4) 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께 영광을 올리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었다.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학 1:6)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학개 선지자를 통하여 성전 건축을 지시한다. 여섯 째달 초하루에 지시를 하였는데 그 달 이십사일에 성전건축을 시작을 하였다. 즉 이십삼일 만에 실행에 옮긴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학개서를 통하여 우리들에게 전하시는 교훈이 있습니다. 성전 건축을 통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예배가 회복이 되고 메시야 왕국이 도래될 것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영적인 우선순위를 가르쳐 줍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자신의 것을 채우기보다 먼저 하라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고 자신의 필요함을 채우려 할 때에 헛수고가 됨을 말합니다.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학 1:6) 그러나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이 더하게 됩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빌 3:15) 바울은 자신의 간증을 통하여 빌립보 교인들에게 은혜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즉 빌립보 교인들을 사랑하고 귀히 여기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거듭 거듭 같은 말을 쓴다고 하였다.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빌 3:1) 그러면서 자신의 실패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교회를 핍박하는 것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순수성을 보존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자신이 의롭게 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얻음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지식이외는 다 배설물로 여겼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 회개는 믿음의 시작이라 한다. 회개는 더 높은 곳을 행하여 달려가기 위한 출발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을 빌립보 교인들에게 전하면서 혹시라도 믿기 어려우면 하나님께서 깨닫도록 해 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전에 성령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도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깊은 속사정을 가장 잘 아시는 분이 성령님이기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 2:10)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도 이와 같은 역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조명 아래에서 해석을 하고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빌 3:3) 할례는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것을 말한다. 지금 빌립보 교회 안에는 육체의 할례를 받은 사람들이 있다. 저들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공격을 받는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참 할례파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빌 3:3) 참 할례파라는 증거는 이러하다.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에 전통과 형식을 따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린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4) 그리고 육체의 자랑으로 하나님의 의를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서만 나오는 구원과 소망으로 자랑을 한다. “그러나 네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육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배설물로 여기는 자이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 3:8)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이와 같은 은혜가 임하였습니다. 즉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의를 얻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왜 하나님의 의가 필요한지를 아십니까? 하나님의 의를 받은 자만이 그의 백성 그리고 그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예수 기리스도와 교회 앞에서 자기 자랑을 한다면 아직도 하나님의 구원을 모르는 것입니다.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빌 3:1) 잔소리와 충고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어린아이가 대답하기를 잔소리는 듣기 싫은 말이고 충고는 기분 나쁜 말이라 한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중요한 것은 반복적으로 강조를 한다.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같은 말을 쓰고 있다. 그러면서 반복된 말을 쓰는 것이 수고롭지 않다. 그러나 너희에게는 안전하다고 한다. 바울은 계속해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기뻐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그 이유는 왜 기뻐할 수밖에 없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얻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의가 어떠한 것인가를 전하고 있다. 즉 하나님의 의는 세상의 어떤 자랑으로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는 학벌, 가문, 혈통, 명예로 얻을 수 없다. 그런데 빌립보 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의를 전가 받았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은혜로만 얻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나 자랑으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깊이 깨달은 자들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의 믿음의 고백은 나 같은 죄인에게 구원의 은혜가 임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내가 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르기를 너는 오직 나를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라 그리하며 내가 형벌을 내리기로 정하시는 하였지만 너의 거처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그들이 부지런히 그들의 모든 행위를 더럽게 하였느니라

  “내가 이르기를 너는 오직 나를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라 그리하며 내가 형벌을 내리기로 정하시는 하였지만 너의 거처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그들이 부지런히 그들의 모든 행위를 더럽게 하였느니라”(습 3:7) 여호와는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이시다. 지금이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형벌을 내리기로 하신 것을 거두고 가나안 땅에 살게 해 주시겠다는 말씀이다. 여호와께서 선지자들을 보내고 또 보내시면서 회개하지 않으면 진노의 심판이 있음을 외치게 하였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은 결단코 망하지 않는다고 전하였다. 왜 거짓 선지자들은 거짓을 전하였을까요? 탐욕에 가득찬 백성들에게 평안하다고 전한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아니하시고 백성들도 가나안 땅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이러한 거짓을 전하므로 인하여 자신들의 배를 채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거짓 선지자들은 죄 가운데 있는 백성들에게 더 죄를 범하게 하는 짓을 한 것이다. 죄악은 거짓과 입 맞춘다. 그러나 “인애는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시 85:10) 인애와 진리가 만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만이 진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입은 자만이 죄의 자리를 벗어나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에는 아버지께 죽기까지 순종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주님께 능력을 구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내 안에 거하라 하십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습 2:3)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과 뜻을 거역하는 자들에게는 진노의 심판이 있다. 그런데 심판을 모르는 자들은 은과 금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을 한다.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우상을 섬기는 자들에게 질투의 불을 내리신다. 이것을 스바냐 선지자를 통하여 전하시는 것이다. 여호와를 모름으로 인한 수치를 당할 백성들에게 호소를 한다. 빨리 회개의 자리로 나오라는 것이다. “명령이 시행되어 날이 겨 같이 지나가기 전,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내리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리할지어다”(습 2:2) 그러나 여호와께서 숨긴 자들은 구원을 받는다. 즉 심판의 날을 면할 수 있음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에게 있음을 말한다. ‘스바냐’의 뜻이 ‘여호와께서 숨기신다’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음을 말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본문에서 ‘겸손한 자들아‘이라 함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산 자가 되어서 그의 말씀과 계명을 지키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지막 날에 심판의 날, 여호와의 분노의 날을 피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본문의 말씀으로 말하면 ’여호와께서 숨긴 자‘가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