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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 알 수 없는 내일 때문에 오늘이 불안하다 .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오늘을 바보처럼 살지 마라 . 오늘의 시간을 중요하게 여겨라 . 오늘의 할 일에 충실하며 기쁨을 누려라 . 내가 행복하듯 친구의 행복을 소중하게 여겨라 “ 요즘 인기 있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담임선생님이 자기 반 아이들에게 전한 교훈이다 .   그런데 이 말들은 어디에선가 많이 들어본 것들이다 .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산상수훈을 통하여 들려주신 말씀이다 . 초등학교 6 학년 3 반 교실에서 적용을 시키고 있다 . 어른들도 이해하기 힘든 교훈이 초등학교 어린아이들에게 적용이 되고 있으니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다 .   사람들은 내일의 일을 알지 못한다 . 그래서 스스로 내일을 준비한다 . 그러기 때문에 공부를 잘해야 한다 . 일류학교를 졸업하여야 돈을 많이 주는 직장이 보장된다 . 그리고 내일의 적을 오늘 해치워야 한다 . 그래야 내일이 편안하다 . 이것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내일에 대한 염려이다 .   그러나 신자들의 기쁨은 이웃을 기쁘게 할 때에 내가 비로소 기뻐할 수 있다 . 이렇게 할 수 있는 근거는 하나님 때문이다 . 사람의 제 일 되는 목적이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고 그 분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는 것이다 .   신자가 이웃을 기쁘게 할 때에 하나님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고 영광이 나타난다 . 이렇게 사는 자를 하나님은 찾으시고 복을 주신다 . 왜 그러느냐 하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증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   그러니 신자들은 오늘도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고 그 분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살아야 한다 . 이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 하나님은 의인을 보존하신다 . 왜 그러느냐하면 의인을 통하여 악인을 부끄럽게 하기 때문이다 . 빛으로 어두움을 부끄럽게 하신다 .   이웃을 사랑한다함은 , 내 몸을 사랑하는 만큼 이웃을 사랑하여야 한다 . 내가 칼에 손을 베었을 때에 아픔이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천국을 비유로 말씀하셨다 .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는 들을 귀 있는 자는 듣게 하심이다 . 하나님나라는 밭에 감추인 것처럼 세상에 와 있다고 하셨고 , 또 진주 장사가 값진 진주를 구하러 다니다가 하나 밖에 없는 진주를 만나면 모든 것으로 바꾸고 , 악인과 의인에 대한 심판이 있음을 말씀하셨다 .   사람들의 삶 가운데 가치를 추구한다 . 일반적으로 건강 , 명예 , 돈을 기준으로 삼는다 . 그런데 이러한 것들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 즉 죽음이후의 영혼에 관한 문제이다 . 사람에게는 육체의 죽음이외에 두 번째의 죽음이 있다 .   두 번째의 사망을 피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삶에서 무엇을 추구하여야 하는가가 문제이다 . 이것에 대한 것을 배우고 깨달을 수 있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이다 . 그러니 이 귀중한 것을 알게 되면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그 밭을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   두 번째의 사망을 면한 자가 가는 곳이 천국이다 . 그런데 천국을 가는 길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 갈 수 있다 . 그러니 이번에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고 그리스도만 따르게 된다 . 세상의 부귀영화보다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는 것이다 .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은 의인과 악인에 대한 심판이 있다 . 이것에 대한 비유를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로 비유하셨다 . 그물을 물 가로 끌어내고 어부가 좋은 것과 못된 것을 갈라낸다 . 이때에 결정권은 어부에게 있다 .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게 된다 .   마지막 때에도 천사들이 내려와서 의인과 악인을 갈라낸다고 하셨다 . 아버지의 뜻에 의하여 결정이 된다 . 하나님께서는 천국을 들어 올 수 있는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자들로만 이미 정하셨다 . 즉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며 섬기는 자들이다 .   교회가 얼마나 고귀한 가치가 있는 곳이며 , 왜 그리스도를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비유란 ?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 그와 비슷한 다른 사물이나 현상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이다 .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한 것을 겨자씨와 누룩으로 표현을 하셨다 . 그러니 이 말씀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겨자씨의 특성과 누룩의 특성을 알아야 한다 .   겨자씨는 일반의 씨보다는 작은 씨이다 . 그 씨가 땅에 떨어지면 찾을 수 없이 작지만 그 씨에는 생명력이 있어서 싹이 나고 열매를 맺게 된다 . 작은 씨에서 시작한 생명력이 커다랗게 자란다는 것이다 . 배추과의 식물로서 3m 까지 성장을 하고 많은 열매를 맺는다 .   누룩은 밀가루에 섞이게 되면 부풀게 한다 . 가루 서 말에 누룩을 조금만 넣어도 가루 전체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 그 당시에 여자가 하루에 빵을 구울 수 있는 밀가루의 양이 서 말이었다 . 23L 의 부피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됨을 알리시는 것이다 . 나사렛 예수가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이 로마의 관원이나 유대인들이 보기에는 작은 일에 불과하다 .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심으로 인하여 점점 흥왕하여 져서 이방나라의 땅에도 , 이방사람들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   또한 하나님의 나라는 외적으로 성장하고 부흥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도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 십자가의 복음이 전하여지게 되면 삶의 생각이나 가치관이 변하게 된다 .   이 땅에 많은 교회들이 있다 . 산등성이에 세워져 빛을 비추어야 한다 . 그런데 빛이 나지를 않는다 . 오히려 세상의 어두움에 가려 있다 . 또한 교회 안에 있는 자들도 스스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인 씨의 문제인가 ? 아니면 우리들의 마음인 밭의 문제인가 ? 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일까 ? 씨에는 생명력이 있다 . 씨가 좋은 밭에 심기어지게 되면 백배의 열매를 맺게 된다 .   신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천국을 비유로 말씀하셨다 . 비유란 ?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 그와 비슷한 다른 사물이나 현상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이다 . 그런데 어떤 설교에서는 비유로 말씀하신 것을 비유로 해석을 하고 있다 . 그러다 보면 예수님이 전하시고자 하는 본래의 뜻을 올바로 헤아리지 못하게 된다 .   성경 말씀을 세밀히 살펴보면 비유로 말씀하신 것을 자세히 해석하여 주신 것을 알 수 있다 . 그중에 하나가 씨뿌리는 비유이다 . 씨를 뿌리는데 길가에 떨어지며 , 돌밭에 , 가시떨기 위에 , 좋은 밭에 떨어지게 된다 . 그러면 열매를 맺는 밭이 있고 , 열매를 맺지 못하는 밭이 있다는 것이다 .   좋은 밭과 나쁜 밭으로 나누어지게 되는데 그 기준이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느냐 , 못 깨닫느냐로 구분이 된다 . 그러니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뜻을 올바로 깨달을 수 있는 귀가 필요하다 . 즉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   들을 귀 있는 자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마음에 찔림이 있다 . 그 찔림으로 인하여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게 된다 . 듣기는 들어도 보기는 보아도 찔림도 없고 깨달음이 없다면 심각한 것이다 . 영적으로 죽은 자이거나 잠자는 자이기 때문이다 .   오늘날 교회 안에 신자라고 하면서 마음에 찔림이 있는 설교를 듣는 것을 아주 불편하게 생각한다 . 어떤 이는 한술 더 떠서 세상에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짜증스러운데 위로의 말씀을 주어야 한다고 성질을 부리는 자들도 있다 . 교회는 불편한 마음을 달래주는 곳이 아니다 .   말씀으로 더러운 죄를 씻는 곳이다 . 또한 말씀으로 날마다 새로워지게 하는 곳이다 .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운동력이 있다 . 하나님의 말씀은 양날이 선 검과 같다 . 말씀이 우리의 심령에 들어오게 되면 , 더러운 곳을 찌르는 것이다 . 그러기 때문에 찔림이 있다 .   찔림이 있으면 회개의 자리로 나가야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은 이후에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 . 죽든지 살든지 주의 것으로 자기의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는 삶을 살았다 . 이것을 좀 구체적으로 전하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남을 생애를 헌신하겠다는 것이다 .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받는 고난도 즐거움으로 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 주님의 몸된 교회란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무리를 말하는 것이다 . 그래서 육체의 얼굴을 보지 못한 교회에도 편지를 보내게 된다 .   얼굴도 보지 못한 교인들에게 편지를 보내다 보니 바울 자신에 대한 소개가 있어야 했다 . 즉 자신이 누구이며 무슨 일을 하며 ,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지를 서신서에 적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좋은 소식이라 한다 . 그 이유는 죄의 책임으로 인하여 지옥불에 가야만 하는 자들에게 그 길을 피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에 좋은 소식이다 . 그래서 좋은 소식을 전하기 전에 먼저 등장하는 단어가 경고이다 .   세례요한은 독사의 자식들아 하면서 회개를 촉구하였고 , 사도 베드로도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외쳤다 . 사도바울도 만찬가지이다 . 각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경고의 메시지를 먼저 전하는 것이다 . 구원을 왜 받아야 하는지를 전하고 있다 .   첫 번째는 하나님의 죄에 대한 진노의 심판이 있다는 것이고 , 두 번 째는 다시 오실 주님 앞에 완전한자로 서게 함이다 . 만일 이와 같은 분명한 목적이 없이 사람이 모여 있다면 , 그곳은 주님의 몸된 교회라고 할 수 없다 .   그러니 교회에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면한 자들이 모인 곳이고 ,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완전한 자가 되기 위하여 말씀과 기도로 신앙생활을 하여야 한다 .   그런데 많은 신자들이 생각도 없이 , 목적도 없이 교회에 나오는 자들이 너무 많다 . 자기의 생각이나 철학을

이익을 탐하는 모든 자의 길은 다 이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하느니라

오늘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 여왕의 교실 ’ 이라는 드라마를 보라는 권유가 있어 , 드라마에는 관심이 없지만 작정을 하고 보았다 . 흔히들 드라마 하면 남녀관계의 복잡한 사랑이야기인 불륜의 이야기로 생각을 하고 있다 . 그런데 아니었다 . 마음이 쨘하였다 .   드라마를 보면서 TV 속에서 이슈로 다루었던 국제중학교로 인하였던 문제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 드라마의 내용의 시작은 국제중학교를 들어가기 위하여 초등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경쟁의 상황이 전개된다 . 그 중학교를 들어가기 위해서는 학우들 간에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   그 반의 담임교사는 우수한 교사가 되기 위해서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가르친다 . 그런데 몇 명의 지혜로운 아이들이 선생님에 맞서서 교우들이 경쟁하지 않고 우정으로 한 마음이 되게 하려는 내용이었다 . 이제 막 시작한 드라마이다 . 앞으로도 많은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다 .   아직까지도 한국의 사회구조는 좋은 대학을 나와야 철밥통의 자리에 갈 수 있는 곳이다 . 그러다보니 경쟁이 초등학교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다 . 교육과정에 인성교육이 필요하다고 외치고 있지만 , 교육현장에서는 우정이라는 것은 찾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   경쟁을 통한 교육정책은 성공을 지향하는 것이고 , 돈의 힘이 최고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다 .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의 생각에 의하여 아이들이 망가지고 있다 . 인격을 키워가며 꿈을 꾸어야할 나이에 벌써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   지구의 땅을 밟으며 살았던 사람 가운데 솔로몬 왕 만큼 부귀영화를 누린 사람은 없다 . 그는 밥 그릇이 금으로 된 것이었고 , 심지어 의자까지도 금으로 씌웠다 . 아내와 첩을 합하면 천 명이었고 , 한 끼 음식을 위하여 소를 수십 마리씩 잡고 , 각 종 산해진미를 다 먹었던 사람이었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마음을 정리하고 책상 앞에 조용히 앉을 때까지 바쁜 시간을 보냈다 . 그러다보니 6 월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생각할 시간마저 없었다 . 그리고 세월은 흘러서 일 년의 반이 지났다 . 그러면서 느끼는 것이 인생의 삶이 쉽지 않음을 또 확인하게 된다 .   바쁜 와중에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소설책 하나를 읽었다 . 제목은 커피에 관한 이야기처럼 보였는데 , 커피의 특성을 비유한 사람들의 속마음을 전한 내용이었다 . 나도 평소에 커피를 즐기며 좋아한다 . 그러면서 많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 커피를 통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살펴보려는 것이었다 .   성경의 말씀으로 인간의 마음을 살피면 죄로 더럽혀진 부패한 성품이다 . 죄를 색으로 표현하면 검은색이라 한다 . 사람은 자기의 본성과 친숙한 것이 있다 . 죄의 성품을 갖고 있는 사람은 검은색을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 그 검은색 안에는 여러 가지의 것들이 있으나 겉으로는 나타나지가 않는다 . 또한 검은색 커피 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 커피 가루나 다른 어떤 이물질이 있어도 찾을 수가 없다 .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커피를 마신다 . 기분전환을 위하여 , 혹은 졸음을 쫓기 위하여 , 향이 좋다는 이유이다 .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눌 때나 , 사업상 파트너를 만났을 때도 커피를 마시며 거래를 성사시킨다 .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커피를 마실 때까지의 과정은 이렇다 . 맑고 투명한 열매를 볶는다 . 적당하게 불에 태운다 . 그리고 곱게 갈아서 끓는 물을 부어내린 것이 커피이다 . 어떤 사람은 그냥 마시기도 하고 , 어떤 이들은 하얀색의 크림을 타고 설탕을 섞어 마시기도 한다 .   만드는 과정을 다시 살펴보면 맑은 열매를 검은 색으로 태우고 , 검은색 물을 다시 하얀색으로 만들기 위해 크림을 섞는다 . 그리고 태워서 쓴 맛을 낸 것을 다시 단맛을 내기 위하여 설탕을 넣는다 . 이 과정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이 , 사람의 마음이 쉽게 않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