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비유란?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그와 비슷한 다른 사물이나 현상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한 것을 겨자씨와 누룩으로 표현을 하셨다. 그러니 이 말씀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겨자씨의 특성과 누룩의 특성을 알아야 한다.
 
겨자씨는 일반의 씨보다는 작은 씨이다. 그 씨가 땅에 떨어지면 찾을 수 없이 작지만 그 씨에는 생명력이 있어서 싹이 나고 열매를 맺게 된다. 작은 씨에서 시작한 생명력이 커다랗게 자란다는 것이다. 배추과의 식물로서 3m까지 성장을 하고 많은 열매를 맺는다.
 
누룩은 밀가루에 섞이게 되면 부풀게 한다. 가루 서 말에 누룩을 조금만 넣어도 가루 전체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 당시에 여자가 하루에 빵을 구울 수 있는 밀가루의 양이 서 말이었다. 23L의 부피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됨을 알리시는 것이다. 나사렛 예수가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이 로마의 관원이나 유대인들이 보기에는 작은 일에 불과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심으로 인하여 점점 흥왕하여 져서 이방나라의 땅에도, 이방사람들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는 외적으로 성장하고 부흥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도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십자가의 복음이 전하여지게 되면 삶의 생각이나 가치관이 변하게 된다.
 
이 땅에 많은 교회들이 있다. 산등성이에 세워져 빛을 비추어야 한다. 그런데 빛이 나지를 않는다. 오히려 세상의 어두움에 가려 있다. 또한 교회 안에 있는 자들도 스스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인 씨의 문제인가? 아니면 우리들의 마음인 밭의 문제인가? 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일까? 씨에는 생명력이 있다. 씨가 좋은 밭에 심기어지게 되면 백배의 열매를 맺게 된다.
 
신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게 되면 교회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성장을 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에 생명력이 있지만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열매를 맺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이지만, 공동체나 개인의 내면의 변화가 없다. 사랑은 찾을 수가 없고 강박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를 통하여 반성과 회개를 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들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어리석은 우리들의 모습이다. 우리들의 마음 밭은 변화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악을 쓰고 있다. 말씀을 더 강력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즉 길가에 떨어져도 열매를 맺는 씨를 달라고 아우성치는 모습니다. 아니다 우리의 마음 밭을 갈아야 한다. 회개의 자리로 나가야 한다. 요즘 대표기도나 개인의 기도에서 죄에 대한 회개의 고백은 찾을 수가 없다.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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