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천국을 비유로 말씀하셨다. 비유란?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그와 비슷한 다른 사물이나 현상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설교에서는 비유로 말씀하신 것을 비유로 해석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면 예수님이 전하시고자 하는 본래의 뜻을 올바로 헤아리지 못하게 된다.
 
성경 말씀을 세밀히 살펴보면 비유로 말씀하신 것을 자세히 해석하여 주신 것을 알 수 있다. 그중에 하나가 씨뿌리는 비유이다. 씨를 뿌리는데 길가에 떨어지며, 돌밭에, 가시떨기 위에, 좋은 밭에 떨어지게 된다. 그러면 열매를 맺는 밭이 있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밭이 있다는 것이다.
 
좋은 밭과 나쁜 밭으로 나누어지게 되는데 그 기준이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느냐, 못 깨닫느냐로 구분이 된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뜻을 올바로 깨달을 수 있는 귀가 필요하다. 즉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들을 귀 있는 자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마음에 찔림이 있다. 그 찔림으로 인하여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게 된다. 듣기는 들어도 보기는 보아도 찔림도 없고 깨달음이 없다면 심각한 것이다. 영적으로 죽은 자이거나 잠자는 자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 신자라고 하면서 마음에 찔림이 있는 설교를 듣는 것을 아주 불편하게 생각한다. 어떤 이는 한술 더 떠서 세상에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짜증스러운데 위로의 말씀을 주어야 한다고 성질을 부리는 자들도 있다. 교회는 불편한 마음을 달래주는 곳이 아니다.
 
말씀으로 더러운 죄를 씻는 곳이다. 또한 말씀으로 날마다 새로워지게 하는 곳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운동력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양날이 선 검과 같다. 말씀이 우리의 심령에 들어오게 되면, 더러운 곳을 찌르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찔림이 있다.
 
찔림이 있으면 회개의 자리로 나가야 용서를 받고 새로워진다. 이것이 옛사람의 성품을 버리는 것이다. 반면에 말씀을 듣고도 오히려 분을 발하는 자들이 있다. 이러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적하는 자들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두 종류의 반응이 일어난다. 왜냐하면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있기 때문이다. 가라지는 열매가 없다는 것이다. 성령의 열매가 없다. 늘 분냄과 분쟁과 시기를 일삼고 있다.
 
알곡과 가라지는 추수 때가 되면 확연히 드러나게 된다. 추수 때라 함은 주님의 재림이 임박하였음을 말한다. 푸르고 반질반질한 잎사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열매이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 마음 밭을 갈아야 한다. 믿음이 자라고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회개를 잘한다. 즉 더러운 죄를 빨리빨리 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야 열매가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된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13:9)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