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019의 게시물 표시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 사 6:13)   남 유다의 왕인 웃시야는 16 살에 왕위에 올라 52 년간을 통치하였다 . 오늘 본문의 말씀은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가 선지자로 부름을 받는다 .   선지자의 계시는 이스라엘이 폭삭 망할 것이라 한다 . 마치 밤나무나 상수리나무가 뿌리를 남겨두고 베임을 당한 모습과 같다는 것이다 . 눈으로 보기에는 없어진 것 같지만 시간이 흐른 후에 그루터기에서 싹이 나온다 .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스라엘이 다시 싹이 나서 회복할 것이라 한다 .   웃시야 왕의 시대를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 사람들은 부요한 삶을 살 때에도 우상을 섬기고 죄를 짓는다 . 무슨 말인가 하면 풍족한 상태가 되었지만 탐욕에는 끝이 없음을 말하려 하는 것이다 .   사람들의 마음에 탐심과 탐욕에 있는 한은 이웃을 향하여 선한 눈으로 바라볼 수 없다 . 이스라엘의 역사가 그렇고 세계의 역사가 전쟁의 역사이다 . 즉 , 이웃의 것을 빼앗아야 잘 사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   이웃의 것을 빼앗아야 잘 사는 세상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평화의 왕으로 오신다 . 싸움이 없는 세상을 만드시겠다는 것이다 .   요즘 좌파나 우파에서 이념 논쟁을 하고 있다 . 개인의 소득 , 쉼이 있는 삶 , 여가를 누리는 삶 , 인간의 존엄함이 이슈이다 . 하나님 나라에는 이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이 있다 .   싸우지 않고 이웃의 것을 빼앗지 않아도 되는 하나님 나라의 왕께서 약속하신 말씀이다 . 의식주에 관한 약속은 "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마 6:33), 안식이 있는 삶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 눅 21:4)   오늘 본문 말씀은 앞 장에서 ' 서기관들을 삼가라 ' 하시는 말씀과 이어진다 . "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들이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 하시니라 "( 눅 20:47) 고 하셨다 .   이어서 가난한 과부가 전 재산인 두 렙돈을 헌금한다 . 하루 일당을 백 불로 계산하였을 때에 삼불 정도의 가치이다 . 즉 , 전 재산이 삼 불 인데 그 전부를 헌금을 하였다는 것이다 .   오늘의 본문의 말씀을 정리하면 하나님의 계명을 가르치지 않고 , 사람의 계명을 따라 가르치는 서기관이 있고 , 그 가르침을 따라 전 재산을 바치는 가난한 과부이다 .   이 말씀으로 어떠한 교훈을 받을 수 있을까요 ? 서기관이 자기의 배를 채우기 위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사람의 생각으로 전할 수 있다는 것이고 , 하나님께서는 잘못된 지도자를 통해서도 역사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믿음을 지켜야 함을 알게 된다 .   엘리 제사장 가문을 통하여 잘못된 지도자를 사용하셔서 후대의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 제사장의 가문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에 먼저 자신의 몫을 챙기기도 하고 회막 문 앞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을 하기도 하였다 . 그래서 그 가문에 하나님의 영광은 떠나고 엘리와 두 아들도 죽는다 .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가운데서 선지자 사무엘이 나오는 것이다 . 사무엘은 범죄하는 아들들과 함께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음성을 들으며 자라났다 .   오늘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우리의 환경과 조건을 탓하지 말라는 것이다 . 사무엘이 그러했고 , 두 렙돈을 헌금한 가난한 과부가 하나님 앞에 있음을 말하려 한다 .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 빌 2:5)   교회 안에서 한 마음이 되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같은 뜻을 품게 되었다는 것이다 . 그런데 만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목적이 다르다면 결단코 하나가 될 수 없다 .   하나님의 복음은 죄와 수치의 세상에 대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선포하는 것이다 . 세상은 죄로 인하여 실패와 혼돈 속에서 살고 있다 . 이것에 대한 해결책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선포하는 것이다 .   요즘 한국이나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부패한 죄성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을 낱낱이 볼 수 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은 죄를 지어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위선과 뻔뻔함으로 버티는 세상으로부터이다 . 그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이다 .   세상은 하나님이 없는 곳을 말합니다 . 그곳에서는 돈이 우선이며 생명을 연장시키는 일인데 그것을 염려와 두려움으로 이루어가고 있으며 거짓과 위선으로 자신의 탐심과 탐욕을 채우기에 열심인 곳이다 .   이와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 구원의 능력을 나타내어 거듭난 인생으로 만들어서 하나님 앞에서 살게 하시려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다 .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 먼저 ' 하여야 할 일이 있다 . 이것은 구원의 능력이 임한 신자들에게 나타난다 . 그것은 이웃과 싸우지 않고 만일 다툼이 있었을 때에 먼저 사화하는 일이다 . 그리고 이웃을 비판하기 전에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를 확인하는 일이다 .   그 다음은 "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 는 말씀을 깨우치고 따르는 일이다 . 즉 , 하나님을 알고 그분 앞에서 살라는 명령이다 .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반드시 먼저 하여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 그런데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니까 하거늘

"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니까 하거늘 "( 행 16:30)   바울과 실라는 아시아 지역에서 전도를 하다가 예수의 영의 인도하심을 따라 유럽 땅인 빌립보에 도착한다 .   그곳에서 루디아 여인을 만나서 빌립보 교회가 시작된다 . 그리고 귀신들린 여종하나를 만나게 된다 . 그 여종이 바울을 심히 괴롭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즉시 나오게 한다 .   그런데 문제가 생긴 것이다 . 그 여종을 통하여 수익을 챙기던 주인이 있었다 . 그래서 주인에게 잡혀서 관리들에게 끌려 고발을 당한다 . 죄항목은 유대인으로서 빌립보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고 로마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풍속을 전하는 것이다 .   바울과 신라는 옷이 찢기며 많이 맞은 후에 발에 차꼬가 든든히 채워져 옥에 갇힌다 . 그들은 감옥에 갇히자 기도와 찬송을 한다 . 그러자 옥문이 열려서 감옥에 있는 죄수들이 탈옥을 하게 된 것이다 .   오늘 본문에서 전하고자 하는 것은 사도들의 선한 행실이다 . 즉 , 소금과 빛으로서의 존재를 나타내는 것이다 . 옥문이 열리면 갇히어 있던 죄수들이 당연히 도망을 하게 된다 .   그런데 바울과 신라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 옥문을 지키던 간수가 낙심을 하여 칼을 빼서 자결을 하려 한다 . 그 때에 바울이 크게 소리를 지른다 . 우리가 여기 있으니 몸을 상하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   이와 같은 착한 행실을 간수가 본 것이다 . 어찌하면 나도 당신들처럼 선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 하며 질문을 한다 . 그것에 대한 바울의 대답이다 . "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 행 16:31), "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 행 16:31) 그리하여 그 간수의 집식구 모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 행 15:1)   수리아지역에 안디옥 교회가 세워졌다 . 안디옥 교회는 최초의 이방인 교회이다 . 그 교회에 예루살렘으로부터 몇 사람이 내려왔다 .   내려온 이유는 온전한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 이 문제로 인하여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그들과 함께 다툼과 변론이 일어났다 .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사도들과 함께 결론을 내기 위함이다 .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사람들의 주장은 이러하다 . 온전한 구원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로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행하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 그것은 할례이다 .   즉 , 하나님의 은혜에 사람의 행위가 합쳐져야 온전한 구원을 된다는 것이다 . 이러한 것을 율법주의라고 한다 . 율법주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부족하여 사람의 행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   예루살렘 공회에서의 결정은 "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 행 15;11) 하였다 .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 하나님 구원의 은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 그래서 구원받은 자들에게는 오로지 감사만이 있는 것입니다 . 만일 구원에 우리들의 자랑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 우리들은 한 것이 없습니다 .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한 것을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은혜라는 것은 이 세상에서 또는 우리의 손으로 만들 수 없는 것입니다 . 오로지 하나님으로부터만 오는 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 하늘로부터 내려오는데 예배에 참석하는 자들에게 나타납니다 .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 행 14:5)   사도행전 14 장에는 십자가의 복음이 이방 땅에 놀랍게 전해지고 있는데 사도들에 대한 핍박도 점점 더 세지고 있다 .   바울과 바나바는 고난 속에 있으면서도 복음을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 파송교회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 고난이 심한 곳으로 간다는 것이다 .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데 하나님이 직접하시면 안 되는가 라고 생각할 수 있다 .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방식을 이해하게 되면 쉽게 답을 얻게 된다 .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약속하셨다 . "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 창 12:3)   이 말씀을 본문의 상황으로 전하면 , 두 사도가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에게는 복이 임하고 반대로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저주를 내리신다는 것이다 .   이 약속의 말씀을 고난 속에서 이루신다 . 고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심을 두 사도는 확인을 하고 있다 .   하나님의 복이 고난 속에서 함께 하심을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에게 나타내셨다 . 믿음의 족장들이 고난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으므로 고난 속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 .   바울과 바나바가 고난 가운데서 기뻐하는 이유가 그와 같다 . 고난 가운데 있을 때에 , 십자가의 복을 전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한다는 것을 사도들은 몸소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 우리들은 하나님이 어떠한 방식으로 복을 주시고 함께 하여 주시는지를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확인하여야 합니다 . 우리는 착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 준다고 생각합니다 . 성경의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않니하겠느냐

"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않니하겠느냐 "( 행 13:10)   사도행전 13 장에서는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교회에서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선교 여행에서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였다 . 구브로 섬에 도착을 하여 살라미를 거쳐 바보에 이르렀는데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를 만난다 . 그곳에 총독 서기오 바울이 사도 바울과 바나바를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한다 .   그런데 거짓 선지자인 바예수가 방해를 한다 . 바예수는 예수의 아들 , 여호수아의 아들이란 뜻이다 . 이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거짓으로 가르치는 자이다 .   사도 바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거짓 선지자의 실체를 밝히며 물리친다 . 사도 바울이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않니하겠느냐 "( 행 13:10) 라고 하였다 .   마귀는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이며 , 하나님의 의의 가르침을 반대하며 , 생명의 길이 아닌 사망으로 인도하는 일을 한다고 밝히고 있다 . 말씀이 선포되자 거짓 선지자는 즉시 눈이 어둡게 되었다 .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 본문에 등장하는 거짓 선지자의 이름은 바예수입니다 . 이름의 뜻은 예수의 아들입니다 . 예수의 아들이라 하면서 거짓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 오늘날에도 똑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하게 됩니다 . 거짓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것을 말합니다 . 무슨 말씀인가요 ? 하나님의 말씀을 아버지의 뜻대로 해석을 하고 행하여야 함을 말합니다 . 달리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말씀을 인용하면서도 다르게 설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사도 바울의 선교 여행에서 이었던 첫 번째 사건입니다 . 그 대상은 예수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 사 5:7)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관계를 포도원 주인과 포도나무의 비유로 말씀을 하신다 . 왜 그런가하면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목표가 무엇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를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포도원 주인의 소원은 최상품의 포도를 생산하는 것이다 . 그래서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고 그 안에 망대를 세웠고 포도주를 짜는 틀도 만들었는데 들포도를 맺었다 .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묻고 있다 . 너희가 만일 포도원 주인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 사리를 판단하라고 한다 . 그러시면서 담을 헐어 버리겠다고 경고를 하시고 있다 .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잘못을 회개하고 돌이키라는 말씀이다 . 그러나 이스라엘은 회개하지 않았다 .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극상품의 포도열매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흘려 세우신 교회를 통하여 이루시려 하는 것이다 .   극상품의 포도열매를 맺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고 이웃에게는 기쁨과 즐거움을 준다 .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된다 .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제사를 드리지 않았고 , 이웃들에게 유익을 주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빼앗고 유린하였다 .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 우리를 극상품의 포도열매를 맺게 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주신 것입니다 .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 요 15:5) 고 하셨습니다 . 극상품의 포도나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