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눅 21:4)
오늘 본문 말씀은 앞 장에서 '서기관들을 삼가라' 하시는 말씀과 이어진다.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들이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 하시니라"(눅 20:47)고 하셨다.
이어서 가난한 과부가 전 재산인 두 렙돈을 헌금한다. 하루 일당을 백 불로 계산하였을 때에 삼불 정도의 가치이다. 즉, 전 재산이 삼 불 인데 그 전부를 헌금을 하였다는 것이다.
오늘의 본문의 말씀을 정리하면 하나님의 계명을 가르치지 않고, 사람의 계명을 따라 가르치는 서기관이 있고, 그 가르침을 따라 전 재산을 바치는 가난한 과부이다.
이 말씀으로 어떠한 교훈을 받을 수 있을까요? 서기관이 자기의 배를 채우기 위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사람의 생각으로 전할 수 있다는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잘못된 지도자를 통해서도 역사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믿음을 지켜야 함을 알게 된다.
엘리 제사장 가문을 통하여 잘못된 지도자를 사용하셔서 후대의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제사장의 가문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에 먼저 자신의 몫을 챙기기도 하고 회막 문 앞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을 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 가문에 하나님의 영광은 떠나고 엘리와 두 아들도 죽는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가운데서 선지자 사무엘이 나오는 것이다. 사무엘은 범죄하는 아들들과 함께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음성을 들으며 자라났다.
오늘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우리의 환경과 조건을 탓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무엘이 그러했고, 두 렙돈을 헌금한 가난한 과부가 하나님 앞에 있음을 말하려 한다.
가난한 과부가 드리는 믿음의 고백은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이다.
이와 같은 헌금과 믿음의 고백을 받으신 하나님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 3:17) 하나님은 가난한 과부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며 잠잠하게 사랑을 한다는 것이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라도 하나님만 붙잡으라는 권면이다. 조건과 핑계는 이유일 수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자의 마음의 중심이 어디를 향하여 있냐는 것이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들의 중심은 어디를 향하여 있습니까?
하나님께 전적인 항복을 하게 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고, 그 길을 따르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예배와 기도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향합니다.
그러므로 예배와 기도와 찬양에는 그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간혹 대상이 없는 찬양과 예배와 기도를 할 때가 있습니다.
찬양을 부르는데 감동은 있지만 누구를 위한 것인지 분간이 안 되는 때가 있습니다.
찬양은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부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찬양과 대중가요와는 구분을 하실 줄 알아야 합니다.
대중가요의 대상은 '나'입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고 기쁘고 즐거운 것을 불러서 나를 즐겁게 합니다.
그러나 찬양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높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쁘시게 찬양을 받으시는 것은 십자가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릴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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