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가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을 제하여 버리시되 곧 그가 의지하는 모든 양식과 그가 의지하는 모든 물과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가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을 제하여 버리시되 곧 그가 의지하는 모든 양식과 그가 의지하는 모든 물과"(3:1)
 
이스라엘 백성이 바알 신을 섬기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는 백성들의 탐심을 들어주는 이방신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택함을 받은 백성들이 거룩한 삶을 살 때에 안식과 평안을 약속하셨다. 그러나 바알 신은 소원을 비는 데로 들어준다. 그래서 바알 신 앞에 머리를 숙였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는 무속인을 찾아가고, 천국을 가기 위해서는 교회에 다는 사람들이 있다. 이전에 이스라엘 백성이 이렇게 하다가 망한 것이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하늘에서 비를 내려 주셔야 한다. 그래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필요하다. 그런데 웅덩이를 파서 빗물을 가두어 놓은 뒤로부터는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나의 욕심을 채워주는 신은 구별이 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향한 약속의 복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방 신들은 거룩에는 관심도 없습니다.
오로지 물질에만 관심이 있어서 제사를 드리러 오는 자가 방금 전에 무슨 짓을 했는지에도 관심이 없고 오로지 복채만 많이 바치면 소원을 들어 줍니다.
폭망한 이스라엘 백성이나 오늘날 우리들이나 차이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나의 욕심을 채우는 일이라면 이방신에게 머리를 숙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나의 욕심을 채우고 나면 몹시 교만하여 집니다.
그 교만은 창조주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셔서 그들이 좋아했던 것을 제하여 버리고 깨닫게 하여 다시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성경적인 믿음은 내 소원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반면에 무속 신앙은 내 소원을 이루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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