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014의 게시물 표시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인간은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한 점에 불과한 티끌과 같은 존재이다 . 그런데 이 티끌과 같은 존재가 영원하신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놀라운 비밀이 있다 .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 사건을 통하여 알 수 있다는 것이다 .   주님의 십자가의 사건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 . 독생자를 내어주시고 죄인들을 구속하여 주신 놀라운 은혜가 있다 . 즉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하여 놀라운 비밀이 밝혀지고 있다 .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십자가의 죽음의 길을 가신 것이다 . 왜냐하면 십자가의 죽음의 길이 아버지의 뜻이었기 때문이다 .   또한 하늘 아버지는 죽기까지 순종하여 십자가의 죽으신 아들을 살리심으로 인하여 예수님의 아버지가 되심을 증명하셨고 , 아들은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확인된 것이다 . 왜 이렇게 하셨을까 ? 우리들에게 믿음의 확신을 갖게 하시기 위함이다 .   그뿐만 아니라 , 우리 주님은 하늘로 승천하시고 성령하나님을 보내 주셨다 . 그 이유는 우리와 생명적인 연합을 하시기 위함이다 . 그리고 우리 안에 거주하심으로 인하여 아버지와 하나가 되게 하셨다 . 그리하여 아버지가 하시는 일에 하나가 되었다 .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심은 우리들의 죄사함은 물론이고 , 우리 안에서 거하시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하나님에 대하여 살게 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이다 . 더 이상 죄에 대하여 종노릇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우리 안에 함께 거하시고 계신다 .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라고 고백할 수 있는 자는 주님이 보내신 성령이 거하는 자만이 할 수 있다 . 즉 성령의 내재하심으로 인하여 그리스도를 구세주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   더 놀라운 것은 성령이 함께 하는 자들은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증거한다 .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 죽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고대 철학자들 가운데 ‘ 소피스트 ‘ 라는 사람들이 있었다 . 이 사람들의 특징은 진리에는 관심이 없지만 논쟁에서의 승리만을 주장했던 사람들이다 . 요즘 한국에서는 인문학 강의가 인기가 있다 . 그래서 많은 철학자들이 강연을 하고 있다 . 그런데 그들 가운데서도 ’ 소피스트 ’ 들이 철학을 망치고 있다고 하는 외침이 있다 .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선을 추구하였다 . 왜냐하면 선의 끝자락에 진리가 있고 신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 그래서 그들 안에 있는 양심이라는 것을 따라서 진리를 분별하려고 고민하였다 . 그러나 반면에 앞뒤가 맞지도 않는 궤변을 늘어놓는 자들도 있었다 .   요즘 TV 에서 인기 있는 토크쇼에 등장하는 참가자들 중에도 선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논쟁에 논쟁을 거듭하는 자들이 있다 . 그들은 말을 잘하고 있는 것 같지만 진리가 없었던 ‘ 소피스트 ‘ 들의 후예인 것이다 .   그렇다면 교회 강대상에서 외치는 설교마다 진리가 있는가를 따져 보아야 한다 . 만일 진리가 없다면 ‘ 소피스트 ’ 가 되는 것이다 .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과는 상관이 없이 건물이나 크게 짓고 교인 수나 늘리면 된다는 생각이다 .   우리 주님은 제자들에게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 요 6:35) 고 말씀하셨다 . “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 요 6:54-55) 라며 더 구체적으로 양식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다 .   그러므로 주님이 피흘리시고 세우신 몸된 교회에서는 생명의 양식을 공급하여야 한다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자들을 거룩하게 하고 믿음을 성숙하게 하기 위하여 모이게 한 곳이 교회이다 . 그렇다면 강단에서 주님의 살과 피가 공급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가지 않겠노라 하였으며

  오늘날 교회가 신뢰를 잃어버리게 된 것은 근거가 없는 공약을 남발하였기 때문이다 . 달리말하자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근거하지 않는 것들을 진실이라고 외쳤다고 할 수 있다 .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자신의 욕망과 욕구를 채우기 위하여 거짓말을 밥먹듯이 행하였던 자들의 실체가 밝혀지고 있다는 것이다 .   하나님이 신자들에게 주시려 하는 것은 평강이다 . 즉 하나님과 화목하게 지내게 하기 위함이다 . 인간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이룰 수 없다 . 그래서 품안에 계신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시고 화목제물로 십자가에 달리시게 하신 것이다 .   하늘 아버지와 화목을 관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하여 교회를 세우셨다 . 그래서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자들이 모이는 곳이다 . 그리고 화목의 관계를 지속하고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노력을 하여야 한다 . 이것을 평강이라 한다 . 이 평강은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까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는 길은 악인의 길이요 , 심판의 길이다 .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자가 가는 길은 평강의 길이다 .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인이 되었지만 죄인의 길을 가려하는 본성이 있다 . 그래서 교회에서는 말씀으로 옛성품을 버리게 하고 새사람의 성품을 입게 하는 일을 하여야 한다 .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선한 길을 가야 우리의 심령이 평강을 얻을 수 있다 .   바른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면 평강의 기쁨이 넘친다는 것이다 . 예수님께서 나귀의 구유에 성육신하실 때에 하늘의 천군천사가 찬양을 하였다 . “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 눅 2:14) 이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다 .   예수님의 첫 표적은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변하게 하여 포도주로 만든 기적이었다 . 포도주가 떨어져 절망과 낙심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하나님은 우리들을 사랑하신다 . 품안에 계시던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친히 못박으시고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다 . 즉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으실 만큼 우리를 귀하게 여기시는 것이다 . 하나님의 사랑은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사랑하시는 것이다 .   하나님의 지속적인 사랑이 펼쳐지는 곳이 교회이다 . 그런데 한 동안 작은 믿음으로 교회를 판단하였었다 .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제는 그 구원의 은혜를 다시 갚아야 한다고 헌신과 희생을 강요했었다 . 이와 같은 가르침에 주님의 몸된 교회는 세상 사람들도 돌을 던지는 곳이 되고 말았다 .   그리스도인이 구원을 받는 과정을 논리적으로 설명을 한다면 이렇다 . 성령께서 각 개인의 영혼을 거듭나게 하여야 구원이 임하게 된다 . 성령이 함께 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라고 신앙고백을 할 수 있게 된다 . 이와 같은 믿음이 있어야 세례를 받을 수 있다 .   세례를 받은 자들은 다음과 같은 믿음을 갖게 된다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죄사함을 받고 의롭다함을 받았음에 대한 상징이며 보증이 된다 . 세례를 받음으로 인하여 돌이킴의 생활을 선언하는 것이 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함을 나타내는 증거이며 보증이다 . 그리고 주님의 몸된 교회에 지체가 됨을 선언하는 것이 된다 .   그리스도인이 주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주님의 몸된 교회에 지체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복을 받기 위함이다 .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 예수이시다 .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사랑하신다 . 독생자 아들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다 . 모든 만물을 주님의 발 아래에 두셨다 . 이와 같은 것들을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신 것이다 .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시는데 , 예수님을 사랑하신 것 같이 사랑하신다 . 그 방식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 삼음으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에게 임한 사랑과 권세가 우리에게도 임하게 하려 하는 것이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이 지체가 많으나 한 몸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고대사회에서 자신의 소속은 중요한 의미를 나타낸다 . 어느 나라에 속하였는가에 따라 지배하는 백성이 되고 지배를 당하는가를 알 수 있었고 , 주인과 종으로의 구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 즉 어디에 속하였는가에 따라서 자신의 신분과 정체성이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다 .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알리는 것이 세례이다 . 성령의 역사로 거듭났기 때문에 세례를 받게 된다 . 그러므로 인하여 하나님 나라의 소속이 된 것이다 . 이전에는 어두움의 자식이었지만 이제는 빛의 자녀가 된 것이다 .   세례의 의미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의미가 있다 . 죄사함을 받고 의인이 되었다는 상징이며 보증이 된다 . 그리고 그리스도와 연합과 성령을 받았다는 인침이 된다 .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됨을 상징하는 것이다 .   즉 세례를 통하여 신분과 정체성이 확립됨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지혜를 알 수 있다 . 신자들은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다 . 그렇게 하시는 이유가 있다 .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그리스도를 사랑하신 만큼 우리를 사랑하시려는 것이다 .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을 받으신 그리스도와 같이 우리도 살리시기 위함이다 .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 . 그 몸의 지체가 되는 자들은 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자들이다 . 그래서 이제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 순종하여야 한다 . 그러므로 교회의 제직들은 세례를 받은 교인들이어야 자격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   이것이 영적인 복을 받는 방식이다 .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와야 하고 그 몸의 지체가 되어야 하고 ,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을 하여야 한다 . 달리 말하면 교회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 왜냐하면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 그리고 반드시 그 몸의 지체가 되어야 한다 . 제직이 되어서 명령에 따라 순종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   사도 바울이 찬양하고 있다 . “ 우리 가운데서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운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선지자들은 율법을 잘 해석해서 하나님의 뜻을 예언하는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 그래서 선지자들은 아무나 임명할 수가 없다 . 그러므로 선지자들의 영혼은 늘 하나님께 함께 하여야 하며 겸손하여야 한다 .   그들이 먼저하여야 할 것이 율법을 잘 알고 해석을 하여야 한다 . 이스라엘의 최초의 왕에게 기름을 부었던 사무엘 선지자가 있다 . 그는 은퇴를 하고 고향 라마에 가서 거처할 집을 지었다 . 그리고 생도들을 모아 가르쳤다 . 이것이 “ 라마라욧 “ 이다 . 즉 라마라는 곳에 기숙할 수 있는 거처가 있다는 뜻이 된다 .   오늘날에는 이 사명을 감당하는 곳이 신학교이다 . 그래서 그곳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겸손과 순종이 무엇인지를 알게 한다 . 그러므로 신학교에 오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과 열정이 있어야 한다 . 그리고 말씀에 순종하는 겸손이 있어야 한다 .   성경이 말하는 신학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가르치고 사역자의 자세와 인격을 배양하여야 한다 . 만일 그렇지 않으면 조롱을 당하게 된다 . 사울 왕이 사무엘과 다윗을 찾으러 라마에 온 적이 있었다 . 이 일로 인하여 속담이 생겼다 .   “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하니라 ”( 삼상 19:24) 고 하였다 . 즉 무슨 말인가 하면 ,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마음도 없는 자가 선지동산에 왔다는 뜻이 된다 . 하나님의 말씀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할 때에 쓰는 조롱이 된다 .   오늘날에도 신학교에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온다면 “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 하는 조롱을 받게 된다 . 그러므로 신학교에 들어왔다면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찾는 데에 게으르면 안 된다 . 사무엘 선지자가 세운 “ 라마나욧 “ 은 기숙을 하며 배움을 가졌던 것이다 .   신학교나 신학생들이나 성경적인 가르침으로 돌아가 사명과 책임을 찾아야 한다 . 개인의 명예나 이익을 위하여 신학교에 간다면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