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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를 위하여 성읍을 도피성으로 정하여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고 피하게 하라 이는 너희가 복수할 자에게서 도피하는 성을 삼아 살인자가 회중 앞에 서서 판결을 받기까지 죽지 않게 하기 위함이니라

“ 너희를 위하여 성읍을 도피성으로 정하여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고 피하게 하라 이는 너희가 복수할 자에게서 도피하는 성을 삼아 살인자가 회중 앞에 서서 판결을 받기까지 죽지 않게 하기 위함이니라 ”( 민 35:11-12)   민수기 35 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여섯 성읍을 도피성으로 사십 이 성읍과 푸른 초장을 함께 레위지파 사람들에게 주라 하신다 .   레위 지파 사람들은 백성들이 가져오는 십일조로 살아간다 . 곡물과 함께 가축을 드리기 때문에 푸른 초장이 필요한 것이다 .   요단 동편에 세 성읍 , 서편에 세 성읍에 도피성을 만들라 하는 이유는 부지중에 살인한 자들이 공정하게 재판을 받게 하기 위함이다 .   고엘 제도가 있다 . 반드시 보복을 하거나 , 값을 치룬다는 의미가 있다 . 그러므로 살인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다 .   도피성을 만들라 하심은 고엘 제도를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 고의적으로 사람을 죽이지 않은 사람은 법으로 보호를 해 주기 위함이다 . 또한 살인자가 재판을 받기까지 머무르는 곳이다 .   그러나 계획적인 살인한 자들을 반드시 죽이라고 한다 .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도구로 살인한 자들이다 . 또한 기회를 엿 보아 살인한 자들도 반드시 죽이라 한다 .   부지중에 살인자는 도피성으로 피하여 생명을 지킬 수 있다 . 그런데 부지중에 살인 한 것이 밝혀졌더라도 자유롭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 . 그 때의 대제사장이 죽어야 자유인이 되었다 . 그것은 대제사장의 죽음으로 인한 속죄로서만 자유롭게 될 수 있었다 .   하나님께서는 살인한 자를 반드시 죽이라 하신 이유가 있다 . 만일 살인자가 가나안 땅에 머물고 있으면 그 땅이 부정하게 된다 . 피흘린 땅은 부정한 땅에 되는데 살인자의 피를 흘림으로 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 롬 8:39)   하나님께서 택함을 받은 자들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게 하신다 . 왜 그렇게 하실까 ? 이 말씀에 대한 것이 롬 8:28 절에서 “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하셨다 .   야고보서에서는 “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1:2) 하신다 . 고난과 환난을 통한 유익이 있다는 것이다 .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깊이 내려가다가 보면 두려움과 무서움을 느끼게 된다 . 그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려는 믿음이 더 강렬해 진다 .   내 손을 잡고 있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손을 더 강하게 붙잡게 된다 . 그리고 그분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   그리하므로 인하여 그분에 나를 향한 사랑과 믿음이 내 것이 된다 . 그렇게 되었을 때에 그 믿음을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   이것을 체험적인 신앙이라 한다 . 예수 그리스도의 강렬한 사랑을 확인한 신자만이 그분에게 목숨을 걸 수 있다 . 이 믿음의 단계까지 이르러야 한다 . 그래야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갈 수 있다 .   그렇게 되면 그분의 제자가 되며 , 쓰임을 받게 된다 . 이것이 십자가의 도이다 . 십자가의 도는 그 길을 따라 순종하는 자들에게만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 거룩한 주일에 새 생명을 얻으려 주님의 몸된 교회로 나오신 분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평강이 넘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두려워서 스스로 예배를 포기했다는 다른 교회의 소식을 접했을 때에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님들이 대단하게 보였습니다 . 교회 안에 있다고 다 같은 신자가 아닙니다 .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 시 23:4)   양들은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가다보며 험한 골짜기를 만나고 , 우리들의 믿음의 선조들은 일제 강정기 때에 신사참배와 육이오 전쟁을 통하여 사망의 골짜기를 지났고 , 우리들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고 있다 .   사망을 비유로 표현을 하고 있다 . 음침한 깊은 골짜기라 한다 . 음침하다는 것은 어두움이 지배하는 곳이다 . 허망하고 허탈하여 살고 싶은 마음이 없다 . 그런데 그것이 깊은 곳에 있다 .   사망 가운데에 있는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가 필요하다 .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빛을 비추어 주셔서 영혼이 소생한다 . 그리고 깊음에 있는 자를 꺼내기 위해서는 그분의 능력이 필요하다 .   양을 지팡이와 막대기로 인도하시고 보호하신다 . 택함을 받은 백성들에게 지팡이로 인도하심은 말씀을 들려주시는 것이다 . 막대기로 인도하여 주심은 옳은 길을 가게 하기 위하여 따끔하게 정신 차리게 하신다 .   성경적인 믿음의 권고는 믿음의 단계가 깊어져서 아는 단계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 확신한 믿음과 신뢰가 생길 때에 내 것이 된다 . 만일 내 것이 되었다면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는다 . 내 것이 될 수 있는 믿음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말씀하신 것을 굳건히 지킬 때이다 .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은혜는 그분과의 연합이다 . 연합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믿고 의지하는 것을 말한다 . 이것이 믿음이며 , 더 많이 알면 알수록 흔들리지 않는다 .   우리에게는 목자장이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 . 그분은 하늘 아버지 우편에서 우리들을 위하여 아버지께 간구하고 계신다 . 지금 우리들이 당하는 고난을 함께 하시며 믿음을 잘 지키게 하기 위하여 날마다 생명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 계 2:20)   교회는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로 나눈다 . 보이는 교회는 이 땅위에 세워진 교회이며 , 보이지 않는 교회는 이미 천국에 들어간 사람들의 모임을 말한다 .   이 땅에 세워진 교회는 불완전한 교회이며 , 전투적인 교회이다 . 왜냐하면 교회 안에 이단이나 세속적인 것이 들어와서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다 .   그래서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하지 못하면 언제든지 쉽게 속임수에 넘어 갈 수 있다 . 그리고 마귀가 집중 공격을 하는 대상은 목회자이다 . 목회자만 넘어 트리면 교회는 큰 혼란 가운데 빠지기 때문이다 .   본문에 등장하는 이세벨은 두로와 시돈 지방에 살 던 여자이었다 . 그녀가 아합 왕에게 시집을 올 때에 신들도 함께 가져와 산당을 지었다 . 바알 신과 아세라 신을 가져온 것이다 .   바알과 아세라 신은 풍요와 다산의 신이라 믿고 있다 . 바람과 구름비를 바알이 주관하고 아세라는 다산을 준다고 한다 . 마치 비가 내리면 땅에 받아서 씨앗을 낸다는 원리를 이용하여 행음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 아세라 신전에서 여자 사제와 성적인 교합을 하면 아들을 많이 낳는다고 속이고 있다 .   본문에서 자칭 선지자라 하는 이유는 물질을 얻기 위해서는 왕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금식을 선포하기도 하고 , 심판을 하여 돌로 쳐 죽이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은 방법이 그러하였다 .   아합 왕과 이세벨은 북이스라엘의 왕과 왕비였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아니다 . 세상의 물질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었던 자들이다 .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 이 땅에 세워진 교회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하여 평강이 있으면서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때에 그 땅은 너희의 기업이 되리니 곧 가나안 사방 지경이라

“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때에 그 땅은 너희의 기업이 되리니 곧 가나안 사방 지경이라 ”( 민 34:2)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 나타나셔서 가나안 땅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 그리고 이제 그의 후손들이 가나안 땅을 눈 앞에 두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 땅의 경계를 구체적으로 말씀하신다 .   그런데 그 땅에는 원주민이 살고 있다 .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그 땅을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셨다는 것이다 .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 한다 .   이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 그리고 약속하셨다 . “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 마 5:5) 온유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순종하는 자의 겸손함이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서 약속의 땅에 전부를 차지하지 못하였다 . 다윗의 왕 때에 와서 전부를 점령하였다 .   그리고 각 지파의 족장들을 통하여 그 땅을 나누어 주신다 . 그 땅을 제비뽑아 나누는 일을 담당할 자들은 하나님께서 직접 지명해 주신 자들이다 . 그러므로 제비를 뽑는 일도 하나님께 주관하신다는 것이다 .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 이 모든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 그 주인되시는 분께서 어떤 자에게 땅을 주시는가 하면 온유한 자에게라 하셨습니다 . 사람들은 이 땅의 주인이 자신이라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 저들이 살고 있지만 진짜 주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 가나안 땅에 그러했습니다 . 그 땅에 일곱 부족이 살았지만 그들의 땅에 아니었습니다 . 하나님께서 약속한 백성들에게 약속을 땅을 주시는 것입니다 .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면 “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 마 5:5) 온유한 자에게 오는 복을 받을 수

너희가 만일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가 남겨둔 자들이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리는 것이 되어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서 너희를 과롭게 할 것이요

“ 너희가 만일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가 남겨둔 자들이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리는 것이 되어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서 너희를 과롭게 할 것이요 ”( 민 33:55)   민수기 33 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땅에서 출애굽 하여 가나안 땅 건너편 요단강 동편까지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   애굽에서 나올 때에 당당히 대오를 갖추고 나온 것과 첫째 달 열다섯째 날에 라암셋을 떠났는데 유월절 다음 날이었음을 정확히 기록하고 있다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건국 원년을 유월절 사건으로 시작하셨다 . 그 나라는 그 백성들이 스스로 독립을 한 것도 아니고 , 애굽의 노예해방정책에 의한 것도 아닌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과 경륜에 의해 성취된 것이다 .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그 땅의 원주민을 다 몰아내라고 한다 . 만일 저들을 몰아내지 않으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라 하셨다 .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결국에는 “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는 아낙 사람들이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고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만 남았더라 ”( 수 11:22), 다 쫓아내지 못 하였다 . 저들은 블레셋 민족들이다 . 이스라엘 옆에서 늘 귀찮게 성가시게 하였다 .   죄악을 몰아내는 데는 대충이 없다는 것이다 . 진멸하라 하신다 . 다 없애 버리라 명령하셨다 . 이 명령대로 하기 위해서는 날마다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이 임하여야 한다 .   그분의 능력이 임한다함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 능력을 어떤 비법을 통하여 받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는 그 때에 능력을 나타내심을 믿어야 한다 .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시작과 끝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을 꼭 기억하여야 한다 .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 발 닦는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말씀하신대로 순종

또 이르되 우리가 만일 당신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이 땅을 당신의 종들에게 그들의 소유로 주시고 우리에게 요단 강을 건너지 않게 하소서

“ 또 이르되 우리가 만일 당신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이 땅을 당신의 종들에게 그들의 소유로 주시고 우리에게 요단 강을 건너지 않게 하소서 ”( 민 32:5) 오늘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지파 가운데 갓과 르우벤 지파에 관한 이야기이다 . 요단강 동편에서 미디안과의 전쟁을 통해서 노획물을 많이 얻었다 . 이미 가지고 있던 가축들과 빼앗은 것들이 너무 많아서 약속의 땅을 건너가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는 선조들과의 약속을 하셨다 . 그것은 단순히 땅만을 주시겠다는 약속이 아니라 가나안 전쟁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한 전쟁임을 분명히 하셨기 때문이다 . 그들은 요단을 건너지 않게 하여 주소서 하였다 . 이것은 약속의 가나안 땅에는 관심이 없고 , 험난한 가나안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동편에서 안주하겠다는 생각이다 . 이와 같은 사실을 아신 여호와께서 진노를 하신다 . 이것은 마치 가데스바네아 사건 때와 같다는 것이다 . 모세는 이 행위가 가나안 열 정탐꾼의 보고로 불평함으로 많은 사람들이 심판을 받은 것처럼 준엄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 한다 . 세월이 사십 년이나 지났지만 그들의 열조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은 같다 . 인간의 죄성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고 , 열 번의 시험 속에서 많은 백성이 죽는 것을 보고도 변한 것이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요구도 들어주시면서 가나안 전쟁에 참여하게 하신다 . 요단 동편 길르앗에 무너진 성읍들을 고친 다음에 처자식을 이곳에 머물게 하고 , 나머지 지파들과 함께 가나안 땅을 정복할 것을 약속하였다 . 그들은 약속한 대로 약속의 땅을 정복할 때까지 가나안 전쟁에 참여하였다 . 므낫세 반 지파 사람들은 요단 동편에 있는 북쪽에 있는 성읍들을 빼앗고 거주하게 되었다 . 그래서 요단 동편에는 므낫세 반 ( 반은 동편에 거주 ) 지파와 갓 지파 , 르우벤 지파가 땅을 분배받았다 .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 갓 지파와 르우벤 지파 사람들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으라 그 후에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라

“ 이스라엘 자손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으라 그 후에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라 ”( 민 31:2)   민수기 31 장에서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 미디안에게 ‘ 원수를 갚으라 ‘ 는 명령을 하셨다 . 이는 25 장에서 바알브올 사건에 대한 보복이다 . 이스라엘 백성에게 우상숭배하고 , 음행하게 한 것에 대한 것이다 .   레 19:18 절에서 “ 원수를 갚지 말며 ”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다 . 그런데 본 장에서는 ‘ 원수를 갚으라 ’ 하셨다 .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을 적극적으로 타락시킨 미디안의 악행은 곧 하나님의 영광을 짓밟은 대적 행위로 여기시는 것이다 .   이것에 대한 차이가 있다 . 각 개인들에게 있는 원수는 갚지 말라 하시면서 ,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원수들은 죽이라는 것이다 .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과 동일시 하셨기 때문이다 .   이 부분은 신자들에게 있어서도 헛갈리는 문제이다 . 기독교 국가가 어찌 전쟁을 할 수 있는가 ? 오늘 본문이 그 답을 주고 있다 .   이스라엘 백성을 대적한 것은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 된다 . 그러므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나라를 진멸하라는 것이다 . 모든 남자를 죽이라 하셨다 . 이미 결혼한 여자도 죽이라 한다 . 그러나 남자를 알지 못하는 여자는 살려 두라 하셨다 .   이 문제는 개인들 간의 문제와 , 교회와 신자와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 개인들 간의 심판이나 보복은 금하셨지만 , 하나님이 계신 교회를 대적하는 것에서는 심판하라 하셨다 .   그래서 교회에는 치리 ( 징계 ) 가 있다 . 교회의 표지는 말씀 , 성례 , 치리이다 . 만일 교회에 이러한 것이 없으면 거룩한 교회가 아니다 .   ‘ 원수를 사랑하라 ’ 는 말씀은 개인들 간에는 합당하지만 , 이 땅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교회를 대적하는 것에는 ‘ 원수를 갚으라 ’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