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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 롬 8:2)   율법을 통하여 죄를 알게 되고 , 내가 죄인임을 깨닫게 되어 , 예수 그리스도 구원의 은혜에 필요성을 구하게 된다 .   왜 그런가 하면 율법을 통하여 죄인 줄을 아는데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 오히려 율법이 명령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반대로 하는 죄성이 들어난다 .   무슨 말인가 하면 범죄를 막기 위하여 범죄의 현장을 보여주면 오히려 그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모방범죄를 한다는 것이다 . 그래서 마음 안에는 선을 향한 것이 있지만 발걸음은 악을 향하여 있다 .   이와 같이 죄와 사망의 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가 임하여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해방을 시켰다는 것이다 .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셔서 율법을 온전히 지키셨기 때문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연합의 은혜이다 . 그분께서 율법을 다 지키셨는데 구원받은 자가 그의 안에 들어감으로 인하여 율법을 지킨 것이 된다는 것이다 .   그래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이 됨으로 인하여 더 이상 사망의 심판이 없음을 말한다 . 구원은 심판을 면하는 것이며 ,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이 되는 것이다 . 왜냐하면 구원은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 하나님의 능력이다 .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는 죄와 사망의 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 구원의 은혜가 필요한 이유는 죄에 대한 진노의 심판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임하는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이 됩니다 . 이것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 왜 그런가하면 율법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지키신 것이 내가 지킨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 그렇게 되므로 구원받은 사람들은 율법의 정죄의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면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면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 롬 7:7)   오늘 말씀은 탐심이 무엇이며 , 그 위력이 얼마나 강한지를 말하고 있다 . 내 이웃의 것을 부러워하며 , 갖고 싶은 욕심이 탐심이라는 것이다 .   내 이웃이 갖고 있으므로 나도 갖고 싶은 욕심이 탐심이라고 한다 . 그런데 이것이 죄라는 것이다 . 탐심이 율법을 통하여 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그리고 내 마음에 탐심이 있으므로 죄인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   그런데 죄인들은 탐심이 죄 인줄을 알고 있는데 그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 예를 들면 범죄를 예방하기 위하여 성교육을 가르치면 , 그것으로 오히려 성폭력에 이용한다는 말이다 .   죄의 능력은 법을 이용하여 교묘히 죄를 짓게 한다 . 그런데 죄인줄 알면서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 알면서도 지킬 수 없는 율법을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면 지킬 수 있다는 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율법을 온전히 지키시므로 인하여 그분과 연합된 자들은 죄의 법에서 해방이 되며 , 죄를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이 임한다 .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과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할 때만이 행할 수 있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 안에 심기어져 살아있는 운동력이 됩니다 . 말씀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어서 그 말씀대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 그러니 성경공부와 설교를 많이 들으셔야 합니다 .  

여럿이 그들이 호색하는 것을 따르리니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것이요

" 여럿이 그들이 호색하는 것을 따르리니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것이요 "( 벧후 2:2)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마음속에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 . 거짓 선지자나 거짓 교사는 이점을 놓치지 않고 집요하게 파고든다 .   솔로몬 왕은 하나님으로부터 이전의 왕이나 이후에 어느 왕보다 많은 복과 영예를 누렸다 .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 .   그것은 애굽 나라를 두려워하였다 . 그래서 애굽의 공주를 아내로 선택을 한다 . 시대에 따라 외세가 바뀌면서 이웃 나라의 공주를 후궁으로 받아들였다 . 그 숫자가 칠 백 명이며 첩이 삼백 명이었다 .   그 결과로 나타난 현상은 솔로몬 궁 밑으로 산당이 한 채씩 늘어서 그 수가 점점 늘어나자 예루살렘 성 건너편 산에까지 산당을 짓게 된 것이다 .   솔로몬 왕은 이스라엘 왕이 하지 말아야할 것과 하여야 할 것을 지키지 않았다 . 그 결과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갈라지게 한 장본인이 된 것이다 .   오늘 본문은 베드로가 고난을 당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서신을 보내고 있다 . 그 당시에는 영지주의 사상이 교회 안으로 들어왔었다 . 저들의 주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영혼 구원만 있지 육체의 구원은 없다는 것이다 .   그래서 육체의 쾌락을 위하여 호색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 저들은 성경의 솔로몬을 예로 들어서 많은 아내와 호색하는 것을 괜찮은 것이라 한다 .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기 보다는 이방 나라가 침입해 오는 것을 더 두려워한 것이다 .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 우리들 마음 안에는 두려워하는 것이 있습니다 . 사람마다 두려워하는 것이 다릅니다 . 그런데 거짓 선지자나 거짓 교사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 하나님은 우리가 경외하고 두려워 하여야할 분입니다 . 그분은 사랑이 많으시면서 또한 진노의 심판을 준비하시고

세리는 멀리 서서 김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 눅 18:13)   하나님께 영광을 올린다는 것은 우리의 것으로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것으로인가 ? 정답은 하나님의 것으로이다 .   이것에 대한 이해를 바리새인과 세리 비유를 통하여 말씀하셨다 . 바리새인의 기도는 자기가 갖고 있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 "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 불의 , 간 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 눅 18:11-12)   반면에 세리의 기도는 "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 눅 18:30) 라며 기도하였다 .   하나님 앞에서 두 사람의 기도이지만 확연히 다르다 . 즉 누구의 것으로 영광을 올리냐는 것이다 . 바리새인은 자기의 자랑인데 그러나 세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로 채워달라고 한다 .   하나님에 구원의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 . 그것은 자신이 행하신 구원의 은혜로 다시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이다 . 다시 말하면 죄인을 의인으로 만든 다음에 그 의인을 통하여 의로우신 하나님이라 찬양을 받으시는 것이다 .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 하나님은 우리들의 자랑 거리를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 무엇을 받으시는가 하면 ,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깨닫게 하여 그 은혜를 찬양하는 것으로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 그것은 삼위하나님의 십자가의 구속사역을 통하여 베풀어주신 은혜와 사랑입니다 .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리새인은 다른 사람과 같지 않음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 다시 말하면 다른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 요일 4:20)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 그래서 이웃에 대하여 경쟁적이고 배타적이다 .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 죄인들에게 사랑으로 나타나셔서 서로 사랑하라 하신다 . 그런데 이웃 사랑이 정말 중요한 것이다 .   성경 말씀 가운데 "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 마 5:23-24) 하셨다 .   다시 말하면 이웃 사랑을 하지 않는 자들의 예배는 받지 않으시겠다는 것이다 .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니 예수 그리스도의 도움을 받으라 하신다 .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라는 것이다 . 십자가의 사랑을 받은 자만이 이웃을 사랑하고 섬길 수 있다 .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사랑을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오늘 본문의 말씀으로 말씀을 드리면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아닙니다 . 그러므로 예배를 받지 않으시겠답니다 . 오는 주일에는 이웃을 섬기고 사랑한 것을 들고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내려 놓으셔야 합니다 . 그것이 그분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   지금 이 시간에도 슬픔과 고난을 당하고 있는 믿음의 식구들이 있습니다 .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옆에서 함께 슬퍼하며 울어주는 것입니다 .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 롬 6:11)   간혹 신자들 가운데 저 사람이 나의 십자가라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 즉 , 속 썩이는 남편이나 자식이 내가 짊어져야할 십자가라고 한다 .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육체의 가시라고 한다 .   신자가 짊어지어야 할 십자가는 증인으로 사는 것을 말한다 .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기의 생각이나 욕심으로 살지 않는 것이다 .   십자가를 짊어진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 제자다움을 채우는 것을 말한다 . 가지가 줄기에 붙어서 열매를 맺는 것이다 . 그러면 열매로 인하여 아버지가 기뻐하신다 .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다 .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 죄의 책임을 면한 자로서 그리고 죄로부터 자유를 얻은 기쁨으로 살면서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 이렇게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이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 앞에서는 산 자가 되는 것이다 .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 내가 짊어지어야 할 십자가는 매일 당연히 하여야 할 일을 말합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십자가의 은혜를 내게 채우는 작업입니다 . 배우고 , 익히고 , 행함의 자리까지 가야 합니다 . 믿음이 열매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 포도나무 가지는 포도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 그래야 가지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 생명을 소유하고 살아 있는 자만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 롬 5:20)   성경의 말씀을 묵상하다가 보면 깨닫기가 쉽지 않은 구절들이 있다 . 오늘 본문도 그러한 것 가운데 하나이다 .   먼저 율법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 율법은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지식을 준다 . 그리고 나 자신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 . 죄가 어떤 것인지를 알면서도 계속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이다 .   죄 아래에 지배를 받고 있음을 알게 되어 죄에서 구원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깨닫게 된다 . 그래서 날마다 그분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이러한 고백이 나오게 하기 위하여 율법을 주셨다 .   신자가 율법의 내용을 모른다는 것은 죄에 대한 지식이 없다는 것이다 . 그러다 보니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와도 죄의 용서의 회개를 할 것이 없다 .   또한 죄가 무엇인지를 알면서 죄를 범하는 자리로 가고 있는 자신의 연약함을 알게 된다 . 그뿐만 아니라 범죄의 행위를 보고 모방하려는 악한 마음이 있음도 확인한다 .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 신자들의 믿음은 스스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들음에서 나는 것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됨을 말합니다 .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오는 이유는 우리들의 죄와 무지함 때문입니다 . 하나님의 율법을 알지 못하면 죄가 무엇이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 나의 죄를 알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 마치 내 몸에 더러운 것이 묻어 있으면 몸을 씻는 것과 같습니다 . 더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은 몸을 씻지 않습니다 . 내 마음에 생각에 더러운 것들이 가득한데 어찌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오지 않을 수 있습니까 ? 선한 양심과 정결한 마음으로 사람답게 사는 것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 롬 5:3)   신자의 운명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하여 의인이 되었다 . 그리고 영광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신분을 얻게 된 것이다 .   그런데 영광의 약속을 향하여 가는 과정에 환난이 있다고 한다 . 그러므로 신자들에게 환난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한다 . 왜 영광의 약속을 가는 과정에 환난이 있어야 하는가 ?   그 이유는 마음속에 있는 불순물을 제거하여야 한다 . 불순물이라 함은 삶의 고민과 걱정거리이다 . 과정을 통하여 영원한 가치와 안식의 기쁨을 알고 깨닫게 한다 . 이것은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인내를 요구한다 .   이 과정을 거친 사람들이 있다 . 요셉이 있고 , 욥도 있다 . 요셉은 십대에 형들에게 종으로 팔려가 애굽의 감옥에서 환난의 과정을 겪었고 , 욥은 남들에게 부끄러움 없이 부요한 삶을 누리는 중에 환난을 당한 것이다 .   그들이 환난을 통하여 하나님과 점점 가까워졌다 . 그래서 신자들에게는 환난이 유익이라 한다 . 환난은 하나님께 은혜를 주시는 통로라는 것이다 .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 사람은 동서남북 사방이 막혀야 하늘을 쳐다보고 합니다 . 신자들 역시도 환난이 닥쳐야 간절히 기도를 하게 됩니다 . 그런데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되면 우리를 단단하게 만드십니다 . 순금과 은의 순도를 높임과 같이 우리를 정결한 자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 환난은 마치 금을 정금으로 만들기 위하여는 도가니에 끓여야 합니다 . 그러면 불순물이 제거할 수 있게 됩니다 . 신자들에게 환난을 주시는 이유 또한 그렇습니다 . 우리 마음속에 있는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함입니다 . 오직 하나님 말씀만 의지하게 하는 방식입니다 . 환난을 통하여 거룩한 것과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고 여기시나니

"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고 여기시나니 "( 롬 4:5)   믿음이란 ?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믿는 것이다 . 그래서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 히 11:1) 라고 한다 .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것들은 반드시 이루어지는데 그것을 믿을 때에 의로운 자가 되는 것이다 . 아브라함이 의롭다 함을 받은 시점이 언제인지를 알게 되면 확실하게 알 수 있다 .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이전에 이미 의롭다 함을 받은 자가 된 것이다 .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상속자를 주실 것을 약속하시고 밖으로 이끌고 나가셔서 하늘의 뭇별을 보여 주시며 네 자손이 이와 같이 많을 것이라 하셨다 . 이것을 믿으므로 인하여 의롭다 함을 받았다 .   아브라함에게 상속자를 주시고 자손이 하늘의 뭇별 같이 많게 하는 것을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 그것을 믿는 것을 믿음이라 한다 . 그래서 믿음은 하나님이 하신 일 , 지금 하고 계시는 일 , 그리고 이루실 일을 믿는 것이다 .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 믿음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믿는 것입니다 . 사람의 생각으로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우상숭배가 됩니다 . 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 우리들의 기도 가운데 ' 내게 능력을 주시면 이러이러하게 하겠습니다 ' 가 있습니다 . 능력을 주시면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과 동행할 때에 나타납니다 . 다시 말씀을 드리면 말씀대로 행할 때에 나타나신다는 겁니다 . 그래서 약속의 말씀이 됩니다 . 하나님의 뜻을 따른 믿음인지 , 아니면 나의 뜻대로 믿는지를 생각해 보셔야합니다 . 올바른 깨달음이 있으면 생각나는 것이 이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하겠구나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 그러면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 벧후 1:13)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살 만큼 살게 하시면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 . 우리들과 친숙하였던 베드로도 세상을 떠날 날이 가까이 왔다 .   그는 남은 날 동안에 진리 안에 있는 사람들에 항상 진리가 더 생각나게 하기 위하여 힘쓸 것이라 하였다 . 첫 번째는 그가 보았던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다 . "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 벧후 1:17)   두 번째는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지 말라고 하였다 . "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 벧후 1:21)   그가 직접 눈으로 보았고 , 만졌던 예수 그리스도를 전함으로 성경에 기록된 말씀에 신뢰가 간다 . 그리고 성경은 사람의 생각을 글로 적은 것이 아니라 성령하나님께서 그를 감동시키어 기록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   성경에 기록된 것은 모두 역사적인 사실이다 .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셨던 확실한 증거이다 . 오늘날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볼 수 있다 . 가장 크고 놀라운 것이 죄인 하나가 구원을 받을 때이다 .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 눅 15:10) 무슨 말인가 하면 하나님 보좌 주변에 있는 천사들도 놀라고 기뻐한다는 것이다 .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 열린문 장로교회에서 죄인 하나를 전도하여 구원의 길을 가게 하면 하늘 보좌가 기뻐한다고 합니다 . 이 일을 교회에게 맡기시고 예수 그리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 눅 18:1)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 과부와 불의한 재판장의 비유 ' 로 말씀하셨다 . 과부란 보호자가 없는 사람이다 . 사회적으로 소외당하고 힘이 없는 사람들을 지칭할 때에 쓰는 말이다 . "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니 "( 눅 18:3), 한 과부가 불의한 재판장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달라는 간청이다 .   오늘의 본문 말씀은 나의 원수를 내가 직접 보복하지 말고 재판장에게 맡기라는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라면 "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 롬 12:19) 는 말씀을 따라야 한다 .   성경적인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것이다 .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 다른 것을 섞는 혼합주의자들이 기도를 오해하게 만들었다 . 욕심 ( 분수에 지나치게 바라는 마음 ), 탐욕 ( 사물에 집착하여 만족할 줄 모르는 마음 ) 으로 하는 기도도 들어주신다고 한다 . 이것은 거짓 교사의 가르침이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그 원한을 속히 풀어주신다고 하면서 "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 눅 18:8 하 ) 하셨다 . 무슨 말씀인가 하면 다시 오셔서 심판을 하실 때에 세상에 있는 것으로 심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의 말씀으로 심판을 하신다는 것이다 .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 우리들 안에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하여서 응어리진 마음은 무엇입니까 ?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