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1:18)
 
사도 바울은 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했을까? 그 이유는 히브리 사고와 헬라 철학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의 지혜로 알지 못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불의를 행한 자들에게 진노의 심판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사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이 땅으로 오셔서 구원 계획을 세우신다. 그것을 이루시는 방식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사람으로 오시는 성육신 사건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게 하신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과 관계가 다시 복원이 되는 것이다.
 
에덴동산 안에 있었던 아담과 하나님의 관계처럼 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본래의 목적대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의 위에 머물러 있다. 그것에 대한 증거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악한 일을 하면서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자들입니다.
에덴동산 안에 있는 아담처럼 하나님 앞에서의 즐거움과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죄없는 아담은 하나님을 사랑하였지만 죄를 범하였던 아담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숨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구원 안에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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