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022의 게시물 표시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내가 말할 때에 그들은 싸우려 하는도다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내가 말할 때에 그들은 싸우려 하는도다”(시 120:7)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은 인류의 죄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다. 죄를 해결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가 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하나님이 계신다.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후 5:19) 즉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은혜이다. 죄에 대하여는 죽고 하나님 앞에서 산 은혜이다. 이러한 은혜가 날마다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를 찬양하고 말씀을 듣는다. 본문에서 시편의 기자가 화평을 원하는데 악인들은 싸우려 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악인들이 거짓과 술수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작정에는 마지막 날에 죄에 대한 심판이 있습니다. 죄의 심판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하나님 앞에서 산 자가 되어서 그분의 말씀을 지키며 살게 됩니다. 이와 같은 은혜를 알며 지키는 자가 화평을 원하며 지키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내 생명을 건져 주소서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내 생명을 건져 주소서”(시 120:2) 시편의 기자는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를 가진 자들과 함께 있다. 이 때에 의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교훈이다. 악인들의 혀는 잘 연마된 화살과 같다. 즉 칼날이 무디면 숫돌에 날을 세운다. 그러면 날카로운 칼이 되어 잘 자를 수 있다. 악인들의 말에는 사람들을 상하게 하는 독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인들은 이러한 악한 악인들을 어떻게 상대하여야 하는가? 기도를 하여야 한다. 먼저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탄원의 기도를 하여야 하며, 그런 다음에는 판단과 심판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맡기고, 잊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 예수 그리스도에게 맡기는가? 공의의 심판을 하시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하면 탄원의 기도를 한다고 할지라도 말씀의 기준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악인들의 악함도 공의의 심판을 받는다. 그러면 공의의 심판을 통하여 하나님의 화살과 불이 임한다. “장사의 날카로운 화살과 로뎀 나무 숯불이리로다”(시 120:4)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도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마 12:36) 무익한 말을 하는 자들은 심문을 받으며 심판을 받는다 하였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를 가진 자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이것입니다. “너 속이는 혀여 무엇을 네게 주며 무엇을 네게 더 할꼬”(시 120:3)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불의 심판이라는 겁니다. “장사의 날카로운 화살과 로뎀 나무 숯불이리로다”(시 120:4) 그러니 거짓말하는 자에게 고난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 기도하시며 악인들에게 임할 심판을 맡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인들이 악인들을 대처하는 믿음의 자세가 됩니다.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행 16:15)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떠난다.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세워진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고 유럽으로 넘어간다. 유럽 땅인 빌립보 지역에 처음 도착을 한다. 그곳에서 루디아라는 자주색 옷감 장수를 만나서 빌립보 교회가 세워진다. 이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빌립보는 알렉산드리아 왕을 배출한 도시이다. 이곳에서 루디아 여인을 통하여 유럽지역에 십자가의 복음이 전해지는 것인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마 13:33)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에 누룩을 넣어 전부 부풀게 한다는 것을 증거한다. 그리고 구원을 받은 자가의 모습이 어떠함을 보여 준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행 16:15)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구원을 받은 백성들을 통하여 하시려는 것이 무엇인가를 확인한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이러한 것들은 바울이 전하는 십자가의 복음의 증거가 되었고 자랑거리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는 목적이 복음의 증거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으면 마음이 변하고 행동이 변합니다. 본문에서 루디아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는 것과 변화됨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놀라운 능력을 받은 자들에게는 동일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고, 나그네를 영접하라

네가 네 업적과 보물을 의뢰하므로 너도 정복을 당할 것이요 그모스는 그의 제사장들과 고관들과 함께 포로되어 갈 것이라

  “네가 네 업적과 보물을 의뢰하므로 너도 정복을 당할 것이요 그모스는 그의 제사장들과 고관들과 함께 포로되어 갈 것이라”(렘 48:7) 예레미야 48장은 모압이 심판을 받는 내용이다. 이방 나라들이 우상의 신들을 섬겼다. 우상의 신들은 음란과 음탕 그리고 잔인과 포악함을 드러낸다. 모압 사람들이 섬기던 신은 그모스 신이다. 그모스 신을 섬긴다고 함은 어린아이를 불에 태워 드리는 제사를 말한다. 왜 어린 자녀를 불태우면 제사를 드리는가? 물질의 부요함을 얻기 위함이다. 이렇게 큰 사업을 하며 돈이 많을지라도 우상숭배를 하면 멸망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모압의 멸망을 깨지는 그릇으로 비유를 하였다. 그래서 그 나라는 다시 세워지지 못한다. “모압이 여호와를 거슬러 자만하였으므로 멸망하고 다시 나라를 이루지 못하리로다”(렘 48:42) 그렇지만 포로에서는 벗어나게 해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우상 숭배를 하였던 북이스라엘의 벧엘이 심판을 받음 같이 그모스 신을 섬긴 모압도 멸망을 한다. “이스라엘 집이 벧엘을 의뢰하므로 수치를 당한 것 같이 모압이 그모스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리로다”(렘 48:13)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모압 사람들은 돈을 최고로 여겼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돈이 되는 것이라면 자신의 자식까지도 불에 태워 제사를 드렸습니다. 오늘날에도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열심인 것입니다. 그런데 돈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오늘 본문이 전하고 있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하나님의 말씀은 자족하며 살라 하십니다. 즉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기쁨으로 누리며 살라는 것입니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하여 오늘을 바삐 살다고 보니 즐거움과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이는 블레셋 사람을 유린하시며 두로와 시돈에 남이 있는 바 도와 줄 자를 다 끊어 버리시는 날이 올 것이라 여호와께서 갑돌 섬에 남아 있는 블레셋 사람을 유린하시리라

  “이는 블레셋 사람을 유린하시며 두로와 시돈에 남이 있는 바 도와 줄 자를 다 끊어 버리시는 날이 올 것이라 여호와께서 갑돌 섬에 남아 있는 블레셋 사람을 유린하시리라”(렘 47:4) 본문의 말씀의 배경은 애굽의 왕 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고자 유브라데 강으로 올라가므로 남 유다의 요시야 왕이 므깃도에서 싸웠다. 그러나 요시야 왕은 느고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이때에 바벨론 군대가 일어나 블레셋을 칠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것을 비유로 북쪽에서 물이 일어나 넘쳐서 흘러넘치는 홍수로 표현하였다. 물이 범람하여 넘치게 되면 생명과 재산을 다 잃게 된다. 하나님께서 계시하시기를 아버지는 손맥이 풀려서 자녀들을 돌 볼 수 없고, 주변에 도와 줄 자들도 없고, 섬에 살고 있는 자들이 유린당할 것이라 한다. “이는 블레셋 사람을 유린하시며 두로와 시돈에 남이 있는 바 도와 줄 자를 다 끊어 버리시는 날이 올 것이라 여호와께서 갑돌 섬에 남아 있는 블레셋 사람을 유린하시리라”(렘 47:4) 그때에 블레셋의 신인 다곤은 망신을 당할 것이고 힘이 없는 빈약한 자만 남게 될 것이라 하셨다. “가사는 대머리가 되었고 아스글론과 그들에게 남아 있는 평지가 잠잠하게 되었나니 네가 네 몸 베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렘 47:5) 여호와의 칼의 심판이 철저하고 끔찍할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오호라 여호와의 칼이여 네가 언제까지 쉬지 않겠느냐 네 칼집에 들어가서 가만히 쉴지어다”(렘 47:6)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방나라를 심판하십니다. 블레셋이 심판을 당하는 이유는 우상숭배를 하였고, 여호와 하나님을 조롱하였고, 이웃 나라들에게 악행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넓은 의미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성취하게 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종 야곱아 내가 너와 함께 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흩었던 그 나라들은 다 멸할지라도 너는 사라지지 아니하리라 내가 너를 법도대로 장계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 여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종 야곱아 내가 너와 함께 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흩었던 그 나라들은 다 멸할지라도 너는 사라지지 아니하리라 내가 너를 법도대로 장계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 여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렘 46:28) 예레미야 46장에서는 애굽 땅에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경고하였고, 경고한 대로 심판이 이루어졌음을 증거하고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게는 구원의 은혜를 약속하셨다. 하나님께서 바벨론 나라를 막대기로 삼아 애굽을 징계한다. 그럴지라도 그 후에는 그 땅에 이전 같이 사람이 살 곳이 될 것이라 한다. “내가 그들의 생명을 노리는 자의 손 곧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손과 그 종들의 손에 넘기리라 그럴지라도 그 후에는 그 땅에 이전 같이 사람 살 곳이 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46:26) 그리고 이스라엘은 포로된 땅에서 구원하실 것을 약속하셨지만 법도대로 징계할 것을 말씀하셨다. 그래서 포로 칠십 년 동안 바벨론에서 종살이를 하였다. 여호와는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그러하기 때문에 택한 백성이라 할지라도 징계를 받아야 한다.   징계를 받은 애굽 사람이라 이스라엘 사람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아 구원을 받는다. 그분의 십자가의 죽음에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은혜가 임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사망의 죄 값을 예수 그리스도가 속량하여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는 것이 됩니다. 이러한 자비를 베풀어 주신 것을 사랑이라 합니다.

네가 너를 위하여 큰 일을 찾느냐 그것을 찾지 말라 보라 내가 모든 육체에 재난을 내리리라 그러나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는 내가 너에게 네 생명을 노략물 주듯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네가 너를 위하여 큰 일을 찾느냐 그것을 찾지 말라 보라 내가 모든 육체에 재난을 내리리라 그러나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는 내가 너에게 네 생명을 노략물 주듯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45:5) 예레미야 45장은 예레미야의 말을 받아 적은 바룩에게 전하는 메시지이다. 바룩의 집안은 예루살렘 성읍을 관장하는 가문이다. 바룩에게도 출세라는 욕망이 있었다. 그에게 이르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네가 너를 위하여 큰 일을 찾느냐 그것을 찾지 말라 보라 내가 모든 육체에 재난을 내리리라 그러나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는 내가 너에게 네 생명을 노략물 주듯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45:5) 여호와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세상의 것으로 기쁨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기쁨을 주는 것이다. 그 생명의 기쁨이 마치 전쟁에서 승리 후에 얻는 노략물을 차지하는 기쁨이다.   즉 바룩이 가는 모든 곳에서 생명을 지켜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룩에게 전하시고자 하는 메시지는 우주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임을 알게 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본문의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따르기 전에 먼저 생각을 하라는 것입니다.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님을 따르게 되면 출세를 할 것이라 생각을 하였습니다.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마 8:19) 그러자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너의 출세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의 생명을 전하는 것임을 전하시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마 8:20) 성경적인 믿음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으로서 약속하신대로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약속하심에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의 사랑이 있습니다.

잃은 양 같이 내가 방황하오니 주의 종을 찾으소서 내가 주의 계명들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

  “잃은 양 같이 내가 방황하오니 주의 종을 찾으소서 내가 주의 계명들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시 119:176) 시편의 기자는 악인들에게 당하는 고난과 고통이 심하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승리할 수 있도록 주의 공의와 교훈으로 채워 달라 간구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처하여 있는 상황을 길 잃은 양과 같다는 것이다. 즉 목자가 없는 양과 같은 상황임을 말한다. 목자가 잃은 양을 찾듯이 자신을 찾아 달라고 시편 119편을 마치고 있다. 목자가 없는 양은 사나운 짐승들로부터 공격을 막을 수 없어서 생명을 잃게 되고, 생명의 꼴이 있는 곳으로 인도를 받지 못하고, 물을 마시며 안식과 평강을 얻을 수 없다. 시편 기자의 간절한 기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되었다. 친히 말씀하시기를 나는 선한 목자이다 하셨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요 10:14)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주님을 알고 주님도 그 사람들을 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7)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시편의 기자가 바라던 것들이 이루어졌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28) 즉 목자가 되셔서 보호와 인도를 하여 주신다는 것이다. 사나운 악인들로부터 지켜 주시고 생명의 풍성함을 주셔서 날마다 생명의 기쁨이 넘치게 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얼마나 놀라운 은혜를 받았는지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확인하였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누릴 수 있겠습니까? 주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그분의 능력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악인들이 온갖 술수와 모략으로 공격을 받는데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있는 가르침을 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날마다 선포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교회 문 앞에서 사면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계심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시편의 기자는 고난과 고통을 당하고 있다. 그것은 악인들에게 당하는 것인데 거짓과 술수이다. 즉 황당한 거짓말과 음모와 음해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시편의 기자는 당황하며 고민을 하고 있다. 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그분의 계명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계명은 ‘하라‘와 ’하지 말라’로 되어 있다.   계명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써 주신 십계명이다. 십계명을 하나님의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 율례이고, 율례에 심판이 더해지면 규례가 된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는 것이다.   시편의 기자의 고민은 악인들의 악행에도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계명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편의 내용은 그와 같은 상황에서도 주의 법을 기억하여 살았다는 것이다.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시 119:92) 그리고 악인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함을 보았다. 오직 여호와의 말씀만이 영원함을 고백하며 찬양한다. “내가 보니 모든 완전한 것이 다 끝이 있어도 주의 계명들은 심히 넓으니이다”(시 119:96) 그래서 시편의 기자는 하나님의 율법을 깨닫고 지키기 위해서는 주님의 도움을 구하고 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가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시편의 기자는 아직도 고난 가운데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와 평안을 얻고 하는 것이다. “잃은 양 같이 내가 방황하오니 주의 종을 찾으소서 내가 주의 계명들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시 119:176)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죄와 사망의 고통에서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그리고 영생의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명령에 순종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참 신자들은 고난과 환난이 와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안식과 평안을 주십니다. 이와 같은 은혜를 주시기 위하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행 15:1) 수리아 안디옥 교회는 이방 땅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고 한 것이다.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예루살렘으로 보냈다. 이 문제로 인하여 예루살렘 회의가 열리게 뙨 것이 본문의 내용이다. 오늘 생각해야할 문제는(구원을 얻는데) 예수의 십자가 이외에 다른 것,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는가? 또는 구원을 얻는 주님의 십자가의 복음이외에 다른 것이 필요한가? 그리고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차별이 있는가? 에 대한 것이다. 이것을 율법주의라고 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만으로는 부족하여 우리가 무엇인가를 하여야 한다고 하는 사상이다. 이렇게 잘못된 교리가 안디옥 교회에 들어온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은혜를 전면 부인하는 것이 된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그래서 회의의 결론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한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행 15:11)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 금해야할 사항을 결정하여 이방의 교회에 편지를 보낸다.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주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행 15:20) 금령을 정한 이유는 믿음이 연약한 심령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한 것이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 되기 때문이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 13:10)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교회 안에서 교리가 다르면 분열이 일어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분께서 하신 것이 내 것이 되는 것으로 즉 우리가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라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라”(시 119:9) 본문의 말씀은 어떻게 하면 미래의 여정을 순결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것에 대한 대답은 주의 가르침 받는 것을 중단하지 않는 것이다. 주의 가르침을 받아 그 말씀을 마음에 잘 간직하여야 한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 119:11) 그러면 말씀을 깨달은 자가 되어 이제는 계속 사모하는 자가 되었으며 입으로 선포하는 자가 된다. 그 말씀이 인생의 안내자가 되어 세상에 사는 동안 순전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주의 말씀을 기억하며 살아야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고 불순종의 죄를 짓지 않는다. “찬송을 받으실 주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을 내게 가르치소서”(시 119:12) 왜 그런가 하면 심판을 통한 실제적인 징벌이 있기 때문이다. ”주의 율례들을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이다“(시 119:16)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시편의 기자는 인생의 앞날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였습니다. 고민을 하는 이유는 마지막 날에 심판이 있으면 보응의 징벌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직하고 진실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하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우리 몸에서 가장 깊은 곳에 귀한 것과 소중한 것을 두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시 119:1) 여호와의 법을 행하는 자는 복이 있다. 복이 있는 자는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산다. 말씀을 따라 산다고 함에 있어서 어떻게 행하여야 하는지를 본문에서 살필 수 있다. 주의 길에서 행하는 자를 말한다. “참으로 그들은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고 주의 도를 행하는도다”(시 119:3) 즉 길에서 습관화가 된 것이다. 사람은 집으로 가는 길, 사업터로 가는 길을 익숙하다. ’익숙‘이란 뜻은 많이 해보아서 몸에 밴 상태를 말한다. 왜 이와 같이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야 하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에게 반드시 지켜야 할 것들을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명을 삶의 법으로 지켜야 한다. 삶의 법을 배우는 것이 기쁨이 되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도움이 없이는 지킬 수 없다. “내가 주의 율례들을 지키오리니 나를 아주 버리지 마옵소서”(시 119:8)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은 택한 백성들이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게 하기 위함입니다. 육신의 사람은 범죄하여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지혜를 나타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율법을 온전히 지키셨습니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으면 그분과 연합이 됩니다. 그러면 그분께서 율법을 온전히 지키신 능력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은혜입니다. 즉 하나님의 명령을 삶의 법으로 살되 습관화가 되어 길에서 온전한 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시 118:22) 본문의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서도 나타난다. 고난 주간에 성전에 들어가셔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비유로 말씀을 하셨다.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타국으로 가서 열매를 거두려고 자기의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냈더니 죽이고 돌로 쳤다. 그래서 주인은 자기의 아들을 보냈다. 그러나 농부들은 아들을 죽이고 그의 유산을 다 차지하고 십자가에 못을 박는다.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 하고”(마 21:38)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과 농부들에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마 21:42) 시편의 말씀을 읽어본 적이 없느냐 하며 질문을 하셨다. 이 비유의 말씀처럼 저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잡고자 하였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마 21:45)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시편의 말씀에서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이루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에 와서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의 풍성함을 알기 위해서는 구약의 말씀을 묵상하셔야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오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오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시 118:14) 구원에 대한 찬양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홍해를 걷너온 후에 모세의 노래를 통하여 시작되었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출 15:2) 이 찬양의 노래가 이스라엘 후손들에게도 찬양이 되며 기도가 된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바다를 가르고 말을 타고 쫓아오는 애굽의 군사들이 바다에 수장이 되는 것을 보고 찬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위기를 맞이할 때마다 출애굽의 구원을 간구한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는 동일한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그런데 하나님의 오른손의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전히 나타난다. 그 능력으로 포로된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성육신하신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한다. 이것을 마치 건축가가 모퉁이 돌을 버리는 어리석음과 같다는 것이다.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시 118:22)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으로 오신 것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여 주실 때에 나타내신 능력이 하나님께서 오른손으로 하셨다는 것입니다. 온 힘을 다하시고 실수가 없이 구원을 하셨음을 말합니다. “여호와의 오른손이 높이 들렸으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는도다”(시 118:16) 즉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할 때의 능력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내십니다. 이것을 알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시 118:28)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 살면서 고난과 핍박을 당한다. 본문에서도 뭇 나라가 나를 에워쌌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보호를 받게 된 것을 찬양하고 있다. “뭇 나라가 나를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끊으리로다”(시 118:10) 이러한 고난과 핍박을 이기게 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이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은혜를 주심을 말한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 17:11)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서 세상을 이기게 하시는 것이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계 2:7) 세상을 이기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말씀을 지키며 행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죽기까지 순종하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순종하여 구원을 얻은 신자들이 구원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데 마음으로 믿어야 합니다. 마음에는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거짓이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여 보십시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십니다. 그것에 대한 증거가 사도바울의 선교를 통하여 나타납니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니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니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시 118:6) 여호와 하나님은 언약적 사랑을 하시는 분이다. 즉 아브라함에게 이삭에게 야곱에게 약속을 하시고 그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에게는 내가 너를 통하여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하셨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 이삭에게는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면 너와 함께 할 것이라 하셨다.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우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창 26:3) 그리고 야곱에게는 네가 어디로 너와 함께 하리라고 하셨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 28:15) 언약의 하나님께서도 시편의 기자에게도 함께 하셔서 이와 같은 고백을 하게 하신 것이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니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시 118:6) 아브라함에게는 블레셋 땅에서 아내를 빼앗기는 상황에 있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오히려 아비멜렉이 징벌을 받았다. 이삭에게는 기근이 들어 양식에 없어서 굶주림 가운데 있는 고통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순종하여서 그 땅에서 백 배의 수확을 얻었다. 야곱에게는 삼촌 라반의 술수와 핍박에도 약속하신 대로 함께 하여 주셔서 다시 벧엘으로 돌아 왔다. 약속의 하나님께서 시편의 기자에게도 함께 하여 주셔서 승리를 주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에게 함께 하시는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하게 된다. 성육신하셔서 이 땅에서의 모든 고난과 핍박을 다 이기시고 승리를 하셨다. 그 권세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이긴 부활의 승리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권세를 우리들에게 주시기 위하여 성령하나님을 보내 주시는 것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행 14:5) 바울과 바나바가 이고니온에서 복음을 전하자 유대인들 가운데 사도를 따르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반대하는 유대인들과 이방인과 관리들이 반대를 하여 돌로 치려고 달려든다. 두 사도는 돌을 들고 치려하는 자들을 피하여 수리아 안디옥으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루스드라와 더베 지방으로 복음을 전하러 간다. 이 부분에서서 생각을 하여야 한다. 이 사건을 통하여 무엇을 전하려 하는가? 사도들이 어디로 가든지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함을 증거하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 고난을 당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능력을 보여 주는 것이다. 좋은 일이 있을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고난 속에는 내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이다. 이때에 구원이 임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로부터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행 18:10) 바울과 바나바는 고난 중에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임하는 것을 확인하고 확신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돌든 자들을 피하여 수리아 안디옥 교회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더 핍박이 심한 곳으로 갈 수 있음을 전한다.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근거가 된다. 아브라함에게도 이삭에게도 야곱에게도 어디를 가든지 함께 하신다고 하였고 여호와께서는 그 약속을 지키셨다. 그 약속의 말씀이 이제는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셔서 함께 하시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증거가 바울을 통하여 증거를 하는 것이고 우리들에게는 믿음을 갖게 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고난이나 환난을 당한다함은 내가 스스로 구원을 할 수 없을 때를 말합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될 때에 구원자가 나타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