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행 13:23)


본문은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서 설교하는 말씀 가운데 전하는 말씀이다. 사도행전에서는 베드로의 설교, 스데반의 설교, 바울의 설교가 등장한다.


베드로의 설교에서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 받는 자들이 있었고, 스데반은 유대인들에게 설교를 하고 돌에 맞아 죽었다. 바울이 설교를 할 때는 유대인들은 돌을 들고 반대를 하고 이방인들은 기뻐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도대체 설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다. 설교는 말씀으로 사람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선포하는 것이다.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완전성을 증거한 것이고, 스데반의 설교는 유대인들에게 너희 조상들이 틀렸고 너희도 틀렸음을 전하였고, 바울은 나도 틀렸던 자들 가운데 있었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찾아 오셔서 구원을 받았음을 증거하였다.


그래서 바울의 설교 내용도 스데반의 설교를 반복하고 있다. 이것은 바울이 스데반의 설교를 들을 때에 성령이 그를 찾아 오셨다. 그러므로 바울이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스데반이 했던 설교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설교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선포하는 것이므로 바울은 이제 복음이 이방인에게로 행할 것이라 한다.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행 13:46)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설교는 사람이 알아듣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던 일, 하시는 일, 하시려는 일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가 있습니다. 

절대적 권위는 결단코 타협이 있을 수 없습니다.

교회 교인들의 수준이 이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도권을 인정하지 않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도권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바울의 설교에 유대인들이 돌을 들었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주도권을 인정하지 않으면 성경의 말씀을 이해할 수도 없고 설교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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