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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렘 24:7)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으로 보내고 그 가운데서 남은 자를 택하여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이다. 즉 깨닫게 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회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신 30:6) 회개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성령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듣고 묵상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말씀을 들으므로 인하여 깨달음과 죄에 대하여 애통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와 용서를 구하고 은혜와 평강으로 채워야 한다. 본문의 말씀에서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신다는 것이다.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돌아올 수 있게 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회개의 기도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듣고 깨달은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듣고 기도를 하여야 하는지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은혜를 주심을 반드시 기억하셔야 됩니다. 그래서 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는 겁니다. 구원받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두어 하나님을 떠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렘 32:40) 만약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믿다가 하나님을 떠난 일이 생기면 그 사람 마음 안에는 하나님이 계신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겁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렘 23:5) 예레미야 23장은 거짓 선지자들에게 징벌이다. 거짓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에서 나온 말이다. 거짓을 예언하는 자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이 임하지 않는다고 하며 이스라엘에게 평안이 임할 것이라 하였다. 그런데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따랐다. 참 선지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백성들에게 전하지만 거짓 선지자들은 꿈을 꾼 것으로 전한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꿈을 꾼 선지자는 꿈을 말할 것이요 내 말을 받은 자는 성실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라 겨가 어찌 알곡과 같겠느냐”(렘 23:28) 거짓 선지자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말씀을 망령되어 일컫는 자들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면서 자신의 꿈꾼 것을 전한다. “다시는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말하지 말라 각 사람의 말이 자기에게 중벌이 되리는 이는 너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망령되어 사용함이니라 하고”(렘 23:36) 본문에서 이스라엘의 상황은 선지자들은 많은데 온통 거짓 선지자들로 가득차 있다는 것이다. 자기의 꿈을 하나님의 계시라 하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있다. 선지자들은 많은 참 선지자가 없음을 말한다. 또한 참 선지자를 보내면 때리며 핍박을 하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할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렘 23:5)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통하여 말씀을 하신다.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 1:2) 사랑하는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이니 여호와를 찬양함이 영원히 계속되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이니 여호와를 찬양함이 영원히 계속되리로다”(시 111:10)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왜 그런가? 그의 계명에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계명을 깨달게 되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된다. 그것은 본문에서는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라고 한다. 지각이란 깨달음을 통하여 지혜롭게 행할 수 있는 능력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입으로만 찬양하는 것은 올바른 믿음이 아니다. 성경적인 믿음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찬양이라 하며 경외함이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는 창조주로서 구원자로서 택함을 받은 자들과의 영원한 약속이 있다.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면 흔들림이 없게 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은 그분의 말씀으로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알 수 있는 것도 성경의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우리들이 지혜롭고, 우리들의 자녀들이 지혜롭게 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여기서 지혜롭다고 하는 것은 생명과 기쁨입니다. 사망과 생명의 길이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생명의 길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돈과 명예로 생명을 살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로만 영생을 얻을 수 있고 영원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속량하시며 그의 언약을 영원히 세우셨으니 그의 이름이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속량하시며 그의 언약을 영원히 세우셨으니 그의 이름이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시 111:9) 여호와 하나님께 영원한 언약을 세우시고 죄인들을 구원하셨다. 이것을 새 언약(신약)이라 한다. 새 언약의 은혜가 죄인들에게 임하는 것을 중생, 거듭남이라 한다. 거듭남에 대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니고데모와의 대화를 통해서 명확하게 말씀하셨다. 그것은 사람의 지혜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임한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의 일들을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 2:11) 여호와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을 거듭나게 하므로 마음의 원리 변화와 삶의 목적을 변화시킨다. 그래서 믿음과 사랑을 주어 여호와 하나님께 이끌리게 한다. 즉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듭나기 전과 거듭난 후에는 커다란 변화가 있다. 성경에서 거듭나기 전을 육체의 일이라 하고 거듭난 후에 변화를 성령의 열매(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열매)라 한다. 육체의 일은 이러하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갈 5:19-20) 반면에 거듭난 사람들에게는 성령의 열매가 나타난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교회를 다니고 있지만 거듭남의 은혜를 받았는지 아니면 아직도 구원의 은혜가 필요한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왜 이것이 중요한가 하면 거듭남이 없으면 천국에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거듭남의 은혜는 오직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성령하나님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행 9:4)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을 보내고 일꾼을 보내어도 회심하지 않으니 직접 오신다. 즉 구원받기에 완악하고 나쁜 사람이 사울이라는 것이다. 복음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어서 사울과 같은 자들도 변화시킴을 보여 준다. 사울은 복음을 받은 이후에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헬라어로 이름을 바꾸어 바울이라 부르게 된다. 바울은 회심한 이후에 변화된 모습을 사도행전과 서신서에서 보여 준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깨달은 이후에는 그 외의 것들은 배설물로 여긴다. 그리고 고생한 일들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누구를 위하여 일을 하는가를 증거하고 있다. 그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며 이웃에게 유익을 끼치는 자임을 자랑한다. 바울은 이전에 율법을 통하여 자신의 의를 자랑하였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그의 자랑은 율법을 지키면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았다함을 전하고 있다. 그래서 이와 같은 고백을 한다.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 3:9) 즉 하나님의 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도바울이 택함을 받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가 잘나서 택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데 쓰임을 받았습니다. 먼저는 완악한 자도 구원을 받을 수 있음을 바울을 통하여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으로는 하나님의 의를 전가 받을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전가 받을 수 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사도바울을 통하여 확인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증거는 자신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을 자랑합니다.

그들이 대답하기를 이는 그들이 자기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긴 까닭이라 하셨다 할지니라

  “그들이 대답하기를 이는 그들이 자기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긴 까닭이라 하셨다 할지니라”(렘 22:9) 본문의 말씀은 이방인들이 예루살렘이 패망한 것에 대한 조롱이다. 즉 이방 나라사람들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신의 신을 버리고 우상을 섬긴 것에 대한 징벌임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자신의 거룩함을 드러내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택하였다. 그리고 거룩함으로 율법을 주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나라들과 구분이 없이 자신의 욕심을 채우며 살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정의를 배우며 공의를 시행하도록 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서로 도우며 약한 자를 압제하지 말아야 한다. 솔로몬이 이방여인들을 맞이하면서 산당을 지음과 같이 백성들도 우상을 섬기기 위한 다락방을 지었다. 그리고는 노동의 삯을 지불하지 않았다.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것은 정의와 공의를 이 땅에 행하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변호하고 형통하였나니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22:16)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 눈과 마음에 탐욕이 가득하여 살인하며 도둑질을 하였다. “그러나 네 두 눈과 마음은 탐욕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포악을 행하려 할 뿐이니라”(렘 22:17)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신자들의 책임은 하나님의 공의를 시행하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거짓이 거짓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짓말하는 자 속이는 자가 잘 살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거짓말하는 자보다 더 잘 살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들을 택하신 목적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라 너는 이 백성에게 전하라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라 너는 이 백성에게 전하라 하셨느니라”(렘 21:8) 히드기야 왕이 제사장인 바스홀과 스바냐를 예레미야에게 보낸다. 바벨론의 제 3차 침략에 예루살렘에 가까이 임하였기 때문이다. 예레미야가 여호와께 간구하므로 구원의 손길을 얻으려 하는 속셈이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갈대아인들과 싸우는 무기를 뒤로 돌릴 것이라 하신다. 오히려 여호와의 강한 손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치실 것이라 한다. “내가 든 손과 강한 팔 곧 진노와 분노와 대노로 친히 너희를 칠 것이며”(렘 21:5)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아니 하면서 위기를 맞으면 간구하였던 조상들을 따라 행한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저들은 측은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다. 이제라도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라 하신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라 너는 이 백성에게 전하라 하셨느니라”(렘 21:8) 즉 회개를 하면 생명을 얻음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너는 돌아와 다시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 모든 명령을 행할 것이라”(신 30:8) 본문에서 회개하지 않으면서 여호와께 복을 받으려 하는 어리석은 백성들의 모습을 보여 준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회개 없이는 죄사함이 없고 죄사함이 없이는 구원이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은 지키지도 않으면서 복을 받으려하시면 심히 곤란합니다. 성경적인 믿음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나의 영광과 욕심을 채우는 믿음이 되면 그것은 우상숭배가 됩니다. 본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필요할 때만 여호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렘 20:9)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성전의 총감독인 바스홀에게 핍박을 받는다.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으로 채움을 당하였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되어 말씀을 외치므로 인하여 예레미야는 큰 치욕을 당한다. 그가 선지자가 되어 고통을 당하므로 인하여 욥과 같이 자신이 태어난 날에 저주가 임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넋두리를 한다. 그런데 예레미야가 이렇게 말을 할지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마음에 불이 붙어서 더욱 답답하다는 것이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렘 20:9) 그러나 악인이 발악을 할지라도 주께서 보복하여 주심을 믿고 간구하며 선지자의 맡은 일을 감당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보복하심을 보여 달라고 한다. 그리하여 예레미야는 예루살렘과 악인들이 바벨론 군대의 칼에 죽는 것을 보게 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 택함을 받아 쓰임을 받는 자들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더 답답함을 느끼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이루시는 것을 분명히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외치고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난과 핍박을 당하면서도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이유입니다. 복음 전하는 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고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 9:16) 여러분!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예정되어 있음을 알면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말하기를 너희 유다 왕들과 예루살렘 주민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곳에 재앙을 내릴 것이라 그것을 듣는 모든 자의 귀가 떨리니

  “말하기를 너희 유다 왕들과 예루살렘 주민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곳에 재앙을 내릴 것이라 그것을 듣는 모든 자의 귀가 떨리니”(렘 19:3)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을 섬겼던 이스라엘에 진노의 심판이 임하게 된다. 그 심판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것인지를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이스라엘을 심판하는데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신다는 것이다. 이 표현은 구약의 다른 곳에서 듣지 못하였다. 도벳(불이 타오르는 곳)이 백성들이 쓰레기를 태우는 장소에서 이방신에게 자녀를 불태우며 제사를 드렸다. 이제 이곳을 도벳이라 부르지 않고 죽임의 골짜기라 부를 것이라는 재앙이다. 즉 이곳에서 예루살렘 사람들이 대적의 칼에 죽임을 당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이렇게 예레미야를 통하여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외치고 있지만 그들은 회개하지 않는다. 이러한 백성을 완악한 백성이라 한다. 완악함이란 마음이 굳어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불순종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완악한 백성들의 죄값을 속량하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속량을 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기 위하여 성령을 임재하게 하십니다. 왜 이렇게 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하여야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고 약속한 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은 보응의 법칙입니다. 말과 행동을 행한 대로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더 쉽게 표현을 하면 심은 대로 거둔다고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5:57) 여호와 하나님께서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 승리를 주신다. 승리를 주시는 방식이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주신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 승리를 주었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다. 그의 조카 롯의 가족과 재산을 탈취해 갔던 동북쪽에 네 나라와 전쟁을 하였다. 네 개의 연합국을 집에서 길리운 사람 삼백십팔 명으로 싸워서 이겼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는데 멜기세덱의 도움으로 승리를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승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 주시는 것이다. 어떠한 것들로 영원한 대제사장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길 수 없다.   오히려 세상 나라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발등상이 되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시 110:1) 이와 같은 승리를 주시기로 여호와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맹세를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도 여호와 하나님께 맹세하였다. 이와 같은 사실로 인하여 택함을 받은 자들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 승리를 약속하셨는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으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8)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것 가운데 하나도 헛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배와 기도에 열심을 다하시면 모두 여러분의 것이 됩니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시 110:4) 시편 110편은 다윗의 시로서 메시야 예언시이다. 메시야가 오시는데 만왕의 왕으로 오시며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오심을 다윗이 증거하고 있다. 메시야가 만왕의 왕으로 오시는데 승리하시는 방식이 멜기세덱을 따른 승리이다. 멜기세덱은 의의 왕이며 평강의 왕이다.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히 7:2) 멜기세덱은 아브람이 북동쪽 연합국을 상대로 전쟁을 할 때에 승리를 주셨다. 네 개의 연합국이 소돔과 고모라를 침입하여 아브람의 조카 롯과 자식들과 재산을 빼앗아 갔을 때에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데리고 가서 승리하였다. 아브람이 승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이 함께 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에 대한 증거가 아브람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것이다.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창 14:20)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들에게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시다. 왜 이와 같은 말씀이 등장하는가?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 영원한 승리를 주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영원한 제사장이라 명령을 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는 순종하기로 맹세를 하셨다. 이 명령이 오늘 본문에서 선포되는 것이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시 110:4)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고난과 환난 속에서도 넉넉히 이긴다. 그것은 승리를 주시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본문의 말씀이 신약성경에도 소개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에는 영원한 승리가 있음을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행 8:16) 스데반의 죽음으로 인하여 교회에 핍박이 닥쳤다. 그래서 박해를 피하여 빌립 집사는 사마리아 땅에로 내려 가게 되었다. 본문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을 이해하여야 한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즉 사마리아 땅에 성령이 임하시는 장면을 보여줌으로 인하여 성령의 역사하심을 증거하려는 것이다. 빌립 집사가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직분은 조건이 되지 않는다. 왜 그런가 하면 택함을 받은 사람들 안에 보배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지 때문이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들과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모세오경만을 믿고 있었고, 그리심 산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도 성령이 임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기록한 것이다. 사도들을 통하여 성령이 임하므로 확실한 증거하였다.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행 8:17) 그리고 마술사 시몬이라는 자가 등장을 한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 사람을 하나님의 능력을 입은 자라 하였다. 시몬은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고 큰 마술이라 생각하여 돈을 주고 성령을 사려하였다.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행 8:20) 즉 성령의 역사를 왜곡하는 자들은 망한다는 것이다. 빌립은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세례를 베푼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은 고자들도 회복을 시키며 소망을 주는 좋은 소식임을 전하는 것이다.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행 8:39) 이후 빌립 집사는 가이사랴에 머물며 복음 전도자로 살았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도행전은 성령하나님

그러므로 이제 너는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며 계책을 세워 너희를 치려하노니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의 길과 행위를 아름답게 하라 하셨다 하라

  “그러므로 이제 너는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며 계책을 세워 너희를 치려하노니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의 길과 행위를 아름답게 하라 하셨다 하라”(렘 18:11)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토기장이의 집으로 가라 한다. 그곳에 가 봤더니 토기장이가 만든 그릇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깨트리고 다른 그릇으로 만드는 것을 보았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도 계획하신대로 되지 않은 때에는 깨트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 민족이 악에서 돌이키지 않을 때에는 그렇게 한다고 하셨다. “만일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렘 18:8) 그래서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고 그대로 행하라 하신다. “그러므로 이제 너는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며 계책을 세워 너희를 치려하노니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의 길과 행위를 아름답게 하라 하셨다 하라”(렘 18:11) 그런데 백성들은 여호와의 말씀은 헛되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기를 이는 헛되니 우리는 우리의 예획대로 행하며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리라 하느니라”(렘 18:12) 그리고 예레미야를 죽이려 한다. 다른 선지자들도 많으니 찔리는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는 죽이고 평안하다 말하는 선지자들을 따르자는 계획을 세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쥐고 역사하십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천지만물을 움직이시며 죄인을 구원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죄인을 구원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자리로 나가게 하시는 겁니다.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음으로 인하여 망하게 됩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율법입니다. 이것을 지키게 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구원의 복이 예

안식일에 너희 집에서 짐을 내지 말며 어떤 일이라도 하지 말고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명령함 같이 안식일을 거룩히 할지어다

  “안식일에 너희 집에서 짐을 내지 말며 어떤 일이라도 하지 말고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명령함 같이 안식일을 거룩히 할지어다”(렘 17:22)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먼저 주신 것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하셨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였다.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을 버리게 된 것은 자기들의 탐심 때문이다. 본문의 말씀을 보면 안식일에 짐을 성 밖으로 옮기지 말고 성 밖에 있는 것을 안으로 옮기지 말라 한다. 왜 성 안에 있는 것을 성 밖에 있는 것을 옮기지 말라 하는가? 그것은 이방 나라 무역상이 안식일 날에 생활용품과 사치품을 성 밖에서 장터를 펼친 것이다. 그러니 가지고 있는 물건을 성 밖으로 옮겨 갖고자 하는 물건과 물물교환 및 거래를 하였다. 이것에 대한 지적이다. 즉 자신이 필요하고 탐심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율법을 지키라 하시면서 안식일을 먼저 지키라 하시는 것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신자들의 믿음이 외적으로 드러내는 증거가 된다. 달리 말하면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일 성수를 잘 지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갖고 있는 자가 외적으로 드러내는 증거가 주일날 예배를 드리는 겁니다.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서 구원받은 자요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 함은 거짓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에 나아 올 때는 창조주하나님이신 것과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찬양하여야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북방 땅과 그 쫓겨났던 모든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리라

  “이스라엘 자손을 북방 땅과 그 쫓겨났던 모든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리라”(렘 16:15) 남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은 아직도 왜 심판을 받아 이방 땅으로 흩어져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다. 그것은 우상숭배를 하고 율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를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말씀하시되 너희 조상들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서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나를 버려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였음이라”(렘 16:11)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백성들을 다시 돌아올 것을 자신의 이름을 두고 맹세하신다. 맹세를 하시되 애굽에서 히브리 사람들을 구원하였던 여호와께서 다시 흩어진 백성들을 돌아오게 하실 것을 맹세하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을 북방 땅과 그 쫓겨났던 모든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리라”(렘 16:15)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과 능력을 세상에 알리게 하기 위함이다.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심을 알리므로 인하여 구원이 여호와 하나님에게만 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보라 이번에 그들에게 내 손과 내 능력을 알려서 그들로 내 이름이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렘 16:21)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방신을 섬겼던 백성들을 고치고 회복시키기 위하여 이방나라로 보냅니다. 그들이 섬겼던 우상의 나라로 가서 고난을 당하는데 구원이 누구에게서 임하는지를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고난 가운데 우상에게 부르짖었더니 구원이 없음을 깨닫게 합니다. 그런데 구원이 약속의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을 확인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도 세상에서 하다가하다가 안 되어서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이것을 깨달으셔야 합니다. “사람이 어찌 신 아닌 것을 자기의 신으로 삼겠나이까 하리이다”(렘 16:20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 그들은 내 앞에서 쫓아 내보내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 그들은 내 앞에서 쫓아 내보내라”(렘 15:1)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에 변함이 없음을 보여 준다. 모세와 사무엘이 와서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재앙을 받게 된 것은 히스기야의 왕인 므낫세가 남유다 전국에 우상숭배를 섬기게 하였기 때문이다. “유다 왕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예루살렘에 행한 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들을 세계 여러 민족 가운데에 흩으리라”(렘 15:4) 그래서 네 가지로 백성을 벌하신다. “죽을 자는 죽음으로, 칼을 받을 자는 칼로 나아가고, 기근을 당할 자는 기근으로 나아가고, 포로 될 자는 포로 됨으로 나아 갈지니라 하셨다 하라“(렘 15:2하) 이에 대하여 예레미야는 놀라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는데 자신도 망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떤 고난과 환난이 오더라도 흔들리지 말라 하신다. 즉 협박과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의 입이 되어서 외치라는 것이다. 그러면 함께 하시고 구원하여 주신다는 약속이다. ”내가 너로 이 백성 앞에 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너를 칠지라도 이기지 못할 것은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하여 건짐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15:20)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호와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것에 대하여 변함이 없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돌이킬 수 있는 한 가지는 회개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백성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나를 버렸고 내게서 물러갔으므로 네게로 내 손을 펴서 너를 멸하였노니 이는 내가 뜻을 돌이키기에 지쳤음이로다“(렘 15:6) 또한 어떠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고 전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기도하는 자는 망하지 않

사람이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사람이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여호와 하나님께서 찾고 구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정의를 행하며 이웃을 사랑하며 겸손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이것은 깨달음이나 감정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정의로 행함을 말한다. 즉 전인격적으로 고급스런 성품으로 행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고급스러운 성품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다. 겸손한 성품으로 십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십계명을 지킨다면 이 땅에 평화가 임하게 된다. 이웃을 사랑하면 싸움이나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고급스런 인품과 인격은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할 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죽기까지 순종하시므로 인한 성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았다면 이와 같은 성품을 소유하여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함을 닮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구하며 찾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