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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창 37:10)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창 37:10) 성경의 말씀을 묵상 할 때에 여호와께서 믿음의 선조들에게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는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만일 요셉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보며 출세와 성공이라는 안목으로 보게 되면 잘 못된 것이다. 요셉은 두 번의 꿈을 꾼다. 한 번은 형들의 곡식단이 자기에게 절하는 것과, 두 번째는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요셉에게 절한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아버지와 형들은 요셉을 시기하며 꾸짖는다. 그러나 야곱은 요셉의 말을 간직하였다.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창 37:11) 야곱은 자기를 지키시고 인도하셨던 하나님의 약속한 말씀을 기억하고 있다.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창 35:1) 그는 여호와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스스로 이루심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본문의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는 방식으로 이해를 하여야 한다. 하늘과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 같이 많은 민족을 이루기 위하여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시는 것이다. 형들이 요셉을 죽이려 하여 구덩이 넣었고 차마 죽일 수가 없어서 애굽으로 가고 있는 미디안 상인들에게 은 이십에 팔았다. “그 때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창 37:28) 형들은 요셉의 피붙은 채색 옷을 들고 야곱에게가 악한 짐승에게 잡아 먹혔다고 하였다. 그러나 아들을 잃은 아버지 야곱의 슬픔은 죽음의 자리까지 이르렀다. “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에서 곧 에돔의 족보는 이러하니라”(창 36:1)

 “에서 곧 에돔의 족보는 이러하니라”(창 36:1) 창세기 36장 전체가 에돔의 자손들과, 세일 산으로 이주하는 것과 에서의 계보, 가문의 족장들, 세일 땅의 원주민 호리 족속과 에돔 땅의 왕들과 에돔 종족과 그 족장들을 소개하고 있다. 에돔의 족보를 소개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에서에게 약속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야곱의 족속과 에서의 족속이 나누인다는 것이며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게 된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창 25:23) 또한 언약의 땅 가나안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택함을 받은 자들과 택함을 받지 못한 자들의 역사를 대조하기 위함이다. 에서는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을 팔았다고 함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사모한 자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후손들은 스스로 평안을 누리고자 산 위에 살며 물질의 부요함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에서의 후손 가운데 빛나는 인물이 없으며 이스라엘을 괴롭히다가 멸망한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반면에 야곱의 후손 가운데는 역사에 빛나는 인물이 많다. 성경은 이 두 족속을 소개하면서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역사의 주역이 누구인가를 알게 하는데 있다. 즉 역사의 주역은 정치, 경제적으로 탁월한 인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고난과 기쁨을 맛보는 언약의 자손임을 말하려는데 있다는 것이다. 이사야서에서는 에서의 후손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얻을 대상으로 약속을 하였다. 그래서 중동지방에서도 예수를 믿는 사람이 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본문의 말씀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사람들의 이름을 야곱의 후손들 가운데 찾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잘 사는 사람들은 언약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이스라엘입니다. 즉 언약의 자손이라 합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창 35: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창 35:3) 야곱에 벧엘로 올라가는 것에 하나님이 더 열심이신 것을 볼 수 있다. 야곱은 곁길로 빠지려 하는데 여호와께서는 지혜와 의지로 이루어 가심을 확인하게 된다. 내가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루 밤을 보내려 할 때에 나타나시고 약속하신 그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곳에서 제단을 쌓는데 약속한 대로 함께 하여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한다.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창 35:3) 약속의 내용은 야곱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는 것이다. 야곱의 여정에는 삼촌 라반의 악함이 있었고, 형 에서를 만날 때는 두려움이 가득하였고,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는 가족 전체가 죽음의 위험이 있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야곱을 지켜 보호하실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세겜 마을 사면에 두렵게 하여 저들은 야곱의 가족을 추적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의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창 35:5) 벧엘로 돌아온 야곱은 제단을 쌓았다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창 35:7) 다시 나타나신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복을 주셨다. 이름이 야곱에서 이스라엘이 된다. 즉 그의 열두 아들들이 지파를 이루어 이스라엘 나라가 된다는 것이다. 즉 야곱의 아들들로 이스라엘 나라가 세워짐을 말한다. 그리고 큰 민족과 약속한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창 35:12) 야곱은 하나님을 만나고 만났던 그 곳을 벧엘이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 5:6) 1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 5:6) 1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이 그들이 배부를 것이라 하였다. 무엇이 배부르다는 것인가? 하나님의 의를 알았음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는 세상에서 구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의 의를 세우기 위하여 물질의 부를 따른다. 즉 내일이라는 시간을 자신이 준비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을 지키는 수단임을 말한다. 반면에 하나님의 의를 아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종임을 인정한다. 하나님의 의를 안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의롭게 하신 후에 자신이 의롭다함을 받으시겠다는 것이다.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롬 3:26) 즉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나므로 인하여 그분의 성품과 마음을 닮으려 함을 말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자로서 할 일이 있다. 산상수훈에서 너희는 먼저 이것을 하라 하신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하나님 나라의 법과 질서를 먼저 구하여 하나님 나라 사람들답게 살라는 것으로 왕을 경외하며 명령에 순종하라는 것이다. 그 다음은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4) 여호와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는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시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느라“(출 33:19) 세 번째는 자신을 먼저 살피는 자가 되라는 것이다.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 7:5) 즉 남을 정죄하거나 판단하는 자리로 가지 말라 한다. 외 그런가 하면 지금은 구원의 은혜를 받을 때이다. 죄인들에게 구원을 허락하셔서 하나님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 5:6) 본문의 말씀을 우리말 성경에서는 “복되도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여, 그들에게 배부름이 있을 것이다”(마 5:6)이라 한다. 먼저 하나님의 의를 알아야 본문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이 처음 창조되었을 때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다. 즉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창조되었음을 말한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함으로 인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 하나님의 성품과는 거리가 먼 존재가 되었다. 다시 하나님의 형상으로 복원시키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으로 죄사함을 주시고 하나님의 의를 전가시키는 것이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롬 3:25)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의를 전가 받았다. 하나님의 의를 전가 받은 사람은 의로우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갈망하는 자리로 나가는 은혜를 받은 것이다.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롬 3:26) 하나님의 의를 전가 받은 사람들은 자기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게 된다. 여기서 맡긴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죽기까지 순종함을 말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한다. 하나님의 법과 거룩함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거룩하시고 모든 일에 의로우시고 옳으시기 때문이다. 사람이 모든 일에 선하게 살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아야 하고, 하나님의 것을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으면 의의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었음을 말한다. 즉 중생한 영혼이 하나님의 영광을 행하여 나아가는 본능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새 사람이 되었으면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새 부대에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

  “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 딤후 4:2)   목회자에게 맡겨진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이다 . 그래서 기회를 얻기만 하면 외치라는 것이다 . 그러면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을 말한다 .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 곳곳에 마귀가 있어서 방해를 하기 때문이다 . 말씀 전하는 자에게 오래 참음의 덕목을 강조하고 있다 .   마귀는 교묘하게 말씀 전하는 일을 방해하는데 말씀 전하는 자의 인격을 거짓으로 바꾸려는 한다 . 그래서 스스로 포기하게끔 작전을 쓴다 .   또한 말씀 전하는 자를 거짓말하는 자로 중상모략을 꾸민다 . 즉 목사를 헤치려고 계획적으로 일을 꾸민다는 것이다 . 그러나 거짓은 반듯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   이러한 자들에게 지지 말고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라는 것이다 . 가르치되 경책하라 한다 . 정신 차리도록 꾸짖으라는 것이다 . 왜 그런가 하면 개인의 종말이나 세상의 종말을 맞이하며 주님 앞에서 보응의 심판을 받기 때문이다 . 마지막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경계하라 한다 . 옳고 그름의 분명한 한계를 알게 하라는 것이다 .   이것을 깨달을 때까지 권하라 한다 . 달리 말하면 듣고 깨달아 행할 때까지 반복적으로 전하라는 것이다 . 즉 말씀을 전하는 자의 책임은 말씀으로 삶이 바뀌게 하는데 까지 목적을 두라 함이다 .   사람들은 가르침을 받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 오히려 자기를 주장하는 것을 좋아한다 . “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 딤후 4:3) 그렇다고 해서 저들의 입맛에 맞는 말을 전하면 안 된다 . 말씀을 전하는 자도 역시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 “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너희가 우리와 함께 거주하되 땅에 너희 앞에 있으니 여기 머물러 매매하며 여기서 기업을 얻으라 하고”(창 34:10)

  “ 너희가 우리와 함께 거주하되 땅에 너희 앞에 있으니 여기 머물러 매매하며 여기서 기업을 얻으라 하고 ”( 창 34:10)   야곱에게 시험이 왔다 . 세겜 땅을 사서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자기의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다 . 그리고 장막을 친 땅을 백 크시타를 주고 매입을 하였다 . “ 그가 장막을 친 밭을 세겜의 아버지 하물의 아들들의 손에서 백 크시타에 샀으며 ”( 창 33:18)   야곱의 딸 디나가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다가 추장 세겜에게 강간을 당한다 . 추장은 디나를 아내로 맞이하려 한다 . “ 그의 아버지 하몰에게 청하여 이르되 이 소녀를 내 아내로 얻게 하여 주소서 하였더라 ”( 창 34:4)   야곱의 아들들이 들어서 돌아와 이 소식을 듣고 근심을 한다 . 하몰이 야곱과 아들들에게 거래를 한다 . 딸 디나를 주고 이 땅에서 매매하며 기업을 얻으라는 것이다 . “ 너희가 우리와 함께 거주하되 땅에 너희 앞에 있으니 여기 머물러 매매하며 여기서 기업을 얻으라 하고 ”( 창 34:10)   그리고 세겜 사람들이 서로 통혼을 하자며 할례를 행하였다 . 그래서 저들은 할례를 하였다 . “ 성문으로 출입하는 모든 자가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의 말을 듣고 성문으로 출입하는 그 모든 남자가 할레를 받으니라 ”( 창 34:24)   믿음의 생활에는 목적과 방향이 있다 . 지금 야곱은 어디를 향하여 가야 하는가 ? 약속의 땅인 벧엘로 올라가야 한다 . 그런데 자기를 위하여 세겜 땅에 머무른 것이다 .   세겜 땅에 살고 싶은 야곱에게 달콤한 유혹이 왔다 . 이 땅에 거주하면서 너의 기업을 이루라는 것이다 . 또 세겜 사람들이 할례를 받아 한 민족이 되겠다고 한다 . “ 이 사람들은 우리와 친목하고 이 땅은 넓어 그들을 용납할 만하니 그들이 여기서 거주하며 매매하게 하고 우리가 그들의 딸들을 아내로 데려오고 우리 딸들도 그들에게 주자 ”( 창 34:21)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야곱과 아들들을 벧엘로 올라가게 하신다

야곱이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형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창 33:10)

  “ 야곱이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형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 창 33:10)   야곱은 마침내 형 에서를 만나게 되며 형을 만나자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인사를 하였다 . “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 창 33:3)   일곱 번 몸을 굽히며 인사를 하였다함은 진심으로 회개와 용서를 구한 것이 된다 . 그리고 아내들과 자녀들을 에서에게 인사를 시킨다 . “ 에서가 눈을 들어 여인들과 자식들을 보고 묻되 너와 함께 한 이들은 누구냐 야곱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이니이다 ”( 창 33:5)   야곱은 에서에게 가축의 떼를 선물한다 . 선물을 한다고 함은 에서의 용서와 화해의 증거물로 건네 준 것이다 . 즉 에서의 얼굴을 보고도 죽지 아니하였고 마치 하나님의 얼굴을 죽지 아니하였다함은 용서와 화목이 이루어졌음을 말한다 .   에서는 받지 않겠다고 하였지만 야곱이 강권하므로 받게 된다 . “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내 소유도 족하오니 청하건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 ”( 창 33:11)   만일 화해의 선물을 받지 않으면 아직도 불화와 전쟁이 계속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 된다 . 그러므로 에서가 선물을 받으므로 인하여 야곱과 에서 간의 불화와 전쟁은 용서와 화목으로 변하였다 .   이 문제가 하나님과 죄인들 간에서 나타난다 . 죄인을 하나님과 불화와 전쟁의 관계이다 .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재물로 인하여 하나님과 화목의 관계가 된 것이다 .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올 때에 예물을 들고 나온다 . 그 이유는 하나님의 용서하심과 화목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 예물을 드리지 아니하면 적대적의 관계가 된다는 고대시대의 풍습이다 .   그리고 에서와 함께 가자는 것도 거절을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 32:27)

  “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 창 32:27)   창세기 32 장의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과 야곱의 관계로 풀어가야 한다 . 사건 사고 속에 야곱이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과 믿음의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를 알 수 있다 .   야곱은 삼촌 라반과 헤어진 후에 아버지의 집으로 올라간다 . 그런데 세일 땅 에돔 들에 있는 에서를 지나야 약속의 땅에 이르게 된다 .   그래서 자기보다 먼저 종들을 보내어 정탐하게 하였더니 에서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야곱에게 온다는 것이다 . “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 창 32:6)   이 소식을 들은 야곱은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함께 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었다 . “ 야곱이 심히 두렵과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 창 32:7)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를 한다 . 여호와께서 전에 명령하신대로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면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였으니 형 에서의 손에서 건져 주실 것을 간구한다 . “ 내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 창 32:11)   즉 약속하신 말씀을 기억하시고 그 약속을 지키소서 하며 기도를 한 것이다 . “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 창 32:12)   그러나 야곱의 믿음은 아직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였다 . 그는 이미 하나님의 군대를 보았다 . “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 창 32:2)   약속의 하나님은 야곱과 약속한 것을 이루어야 한다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창 31:13)

  “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 창 31:13) 야곱은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 야곱이 많은 양 떼를 얻은 것은 자신들의 아버지의 것을 빼앗은 것이라 하며 적대시 하였다 . “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더라 ”( 창 31:2) 여호와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르시기를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하신다 . “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 창 31:3) 이 말씀을 들은 야곱은 라헬과 레아를 불러 그동안 있었던 일과 많은 양 떼를 얻은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 하며 설명을 한다 .   이 과정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 하셔서 지켜 주었음을 증거한다 . 라반은 야곱과 맺은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였다 . “ 그대들의 아버지가 나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막으사 나를 해치지 못하게 하셨으며 ”( 창 31:7)   라반의 악행과 야곱이 당하는 고난을 다 보고 계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 이전에 나와 언약을 맺은 벧엘로 올라 가라는 것이다 . “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 창 31:13)   왜 그런가하면 약속의 땅으로 올라가야 약속한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 즉 약속한 땅이 아닌 곳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지 않겠다 함이다 .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들은 라헬과 레아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따르겠다고 하며 아버지 라반의 집을 떠날 것을 말한다 . 그래서 라반이 양털을 깍으러 간 사이에 야곱은 식솔과 양 떼를 챙겨서 조용히 떠난다 . 이 사실을 알게 된 라반은 그의 형제들을 데리고 야곱을 쫓아간다 . 칠 일 길을 따라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

  “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 마 5:4)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사랑하신다 .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를 찾으신다 . 그래서 회개하는 영을 주어서 돌아오게 하신다 .   “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으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 ” ( 사 57:15)   그리고 돌아오면 아들로서의 신분을 회복시켜 주신다 . 이것에 대하여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탕자의 비유를 들려 주셨다 .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에게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 그리고 회개의 은혜를 주셨다 . “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 슥 12:10)   회개의 은혜를 받은 자들은 죄에 대하여 애통해 한다 . 얼마만큼 애통하는가 ? 여호와 하나님은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게 하실 때의 독자를 잃는 고통을 느끼셨다 . 즉 통회하는 슬픔이 장자를 잃었을 때의 슬픔 만큼하라는 것이다 .   만일 통회하는 마음이 없이 제사나 예배를 드리게 되면 거역하는 죄를 범하게 된다 . “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이 하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이 하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이 하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행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 사 66:3)   즉 통회하는 마음이 없이 제물만 좋은 것으로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고 , 가증한 것을 드리는 것이며 , 우상 앞에서 기도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 이러한 자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상한 심령의 제사를 받으심을 모를뿐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

  “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 마 5:5)   국어사전에서는 ‘ 온유 ’ 라 함은 성질이 온화하고 부드럽다고 한다 .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는 ‘ 온유 ‘ 는 그러한 것이 아니다 . 즉 노예나 종들이 권위나 권력 앞에서 자세를 낮추는 비굴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 온유한 자로서 모세를 소개하고 있다 . “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 민 12;3) 이 땅위에 살던 사람들 가운데 모세만큼 온유한 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의 인격을 닮은 것을 온유라고 한다 . 하나님을 앎으로 오는 관용이다 .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향하여 반역과 폭언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다 . 그는 백성들이 달려들면 여호와 하나님께 엎드렸다 . 즉 그가 당하고 있는 모든 일을 여호와께 맡기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   성경적인 온유는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있음을 말한다 . 그리고 여호와의 약속의 말씀을 지킬 수 있는 마음의 상태를 온유라 하는 것이다 .   그러므로 온유는 마음에 용기와 강건함이 있다 . 고난을 당하여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이다 . 다윗이 악인에게 고난을 당할 때에도 흔들리지 않았고 , 예수 그리스도가 수난과 고난의 길을 가실 때에도 아버지의 말씀에 죽기까지 순종하는 마음이다 .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 하였다 . 이것은 마귀의 아래에 있을 때에는 종이며 노예이다 . 그러한 자들에게는 미래의 희망이 없다 .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 인하여 그의 상속자 , 후사가 되는 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 “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 롬 8:17)   그러므로 온유한 자는 아무 것도 없는 자인 것 같지만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된다 . “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딤후 3:16)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있다 . 그것은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게 하기 위함이다 . 세상이라 함은 하나님이 없는 곳을 말한다 .   하나님이 없는 곳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자기를 사랑한다고 한다 . 그것은 자신이 왕이 되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신하로 여긴다는 것이다 .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 “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 딤후 3:2)   이것에 대한 증거가 돈을 들고 백화점을 가면 직원들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공순하다는 것이다 . 그래서 악을 쓰며 돈을 모으며 사랑한다 .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무정하고 사납고 선을 행하지 않는다 .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유익이 되지 않으면 냉정해진다 . 그리고 교만하여 남을 가르치기를 좋아 한다 . “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바 되어 ”( 딤후 3:6)   하나님의 사람은 겸손하다 . 성경적인 겸손은 마음과 몸을 낮추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 전능하신 하나님을 알고 자신은 큰 죄인임을 때달은 후에 오는 것을 겸손이라 한다 .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으로 믿음이 약한 자를 가르치려 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 왜 그런가 하면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배우고 배워도 그 끝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 “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 딤후 3:7)   바른 믿음을 가진 자는 세상을 거슬러 살 수밖에 없다 . 그래서 세상에서 박해를 받는다 .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셔서 승리를 한다 . “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 딤후 3:12)   그러므로 바른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성경을 알아야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