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믿음의 공동체라고 한다. 이 공동체를 연결하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 때문에 세워지고 용서가 되고 용납이 된다. 만일 공동체에 사랑이 없게 되면 균열이 생기게 된다. 그런데 공동체를 파괴하는 행위가 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믿음의 공동체는 믿는 대상과 목적과 방향이 같은 사람들이다. 믿음의 고백의 내용은 동일하지만 각 자가 살아온 문화와 배경이 다르다. 그러므로 인하여 자연히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지방색과 학연, 친족으로 인한 사상과 이념이 서로 다르다. 그러다보니 주장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언행의 습관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다.
 
믿음의 대상과 삶의 목적과 방향이 같기 때문에 그 외의 다른 조건은 필요하지 않고 묻지도 말아야 한다. 또한 세상의 학벌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천국은 믿음으로 가는 곳이지 돈이나 지식으로 가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먹고 사는 문제인 경제적인 활동이 사람을 상대하여야 한다. 그렇다보니 공동체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도 관심을 갖는다. 다수의 원리로 인한 결과가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생활을 통하여 만족을 얻지 못한 것을 공동체 안에서 이루려 하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도 한다. 벌어둔 돈도 있는데 사회적인 명분이 없으므로 인하여 적당히 돈도 쓰고 품격을 유지하여 명예를 얻기 위한 자들도 있고, 교인들과 함께 친목하며 외로움을 달래려 하는 자들이다.
 
이와 같은 사람들이 공동체 안에서 이루려는 방법은 세속적이라 한다. 즉 세상에서 통용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세상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곳이다.
 
그러므로 공동체 안에 세속적인 사람들이 당연히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자기의 생각과 뜻대로 공동체를 움직이려 한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하나님의 뜻과 충돌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결과는 당연하다. 인간의 생각이 하나님의 뜻을 이길 수 없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지 않는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죄가 된다는 것이다. 공동체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이 모인 곳이다. 그 사랑은 아들을 십자가에 죽이시고 우리에게 주신 사랑이다. 그 사랑이 우리에게 초월적으로 임한 것이다. 그래서 그 초월적인 사랑을 받은 자들이 서로 피차 용서하며 섬기는 곳이다.
 
분열을 조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대적하는 자가 된다. 사단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옳고 틀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통치는 법으로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법칙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들의 죄를 씻어 주셨다. 모든 것을 다 용서하여 주셨다. 그래서 용서를 받은 자들은 서로 용서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공동체 안에 세속적인 자들은 언제든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고 파헤치며 맹수와 같이 달려든다. 이것이 이민교회의 분열에 아픔이다. 분열을 조장하고 파괴하는 행위는 하나님의 사랑을 부인하는 행위라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즉 십자가의 사랑을 모르는 자는 적그리스도가 되기 때문이다.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요일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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