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에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으셨다. 질문은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님의 대답은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하여 한 말이냐고 반문을 하셨다. 다시 빌라도는 네가 유대인의 왕인데 왜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내게 넘겼는가? 어떤 잘못을 하였는지 말하라 하였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답하셨다. 만일 세상에 속하였다면 제자들이 유대인들의 손에 넘기지 않고 싸웠을 것이라 하셨다. 이 말씀을 이해 못한 빌라도가 또 질문을 한다.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이어 예수님의 대답이 나는 네가 말한 것과 같이 왕이다. 나는 십자가에 죽기 위하여 태어났고, 십자가에 죽기 위하여 세상에 왔다. 그런데 이것이 진리이다.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는다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고 반문을 한다. 진리를 모른다는 것은 참 불행한 일이다. 진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죄에서 자유를 얻는다. 그래서 예수님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고 하셨다.
 
빌라도는 판결을 내려야 한다. 진리를 택하느냐 아니면 백성들의 함성 소리를 택하여야 하는 고민에 서게 된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잘못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수의 백성들의 요구에 따라 예수님에게 십자가 사형을 언도한다. 진리보다는 민심을 택한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이와 같은 현상이 있다. 교회의 정책과 방향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진리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다수의 의견을 택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그 중간에 목사 서 있다. 목사는 어느 의견을 주장할 것인가? 많은 목사들이 진리를 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은 하지만, 다수의 의견을 따른다.
 
다수라는 것은 세상의 나라가 결정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온전하지가 않다. 인간의 생각과 방법은 온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라의 대통령을 뽑을 때도 다수의 표를 얻은 자가 된다. 그러나 임기를 다 할 때쯤 되면 후회에 또 후회를 한다.
 
그렇지만 교회는 다수의 의견으로 정책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진리를 선택하는 곳이다. 힘들고 어려더라도 진리의 길을 택하여야 한다. 그러나 목사 앞에는 먹고 사는 문제가 놓여 있다. 이것이 목사의 마음을 약하게 한다. 그리고 다수는 이것을 이용한다.
 
담임목사 청빙을 위하여 다수의 의견을 따른다. 그런데 이 방법에서 교인들이 하나님께 합한 자인지 사람의 마음에 흡족한 자인지를 구분할 수 있는 믿음이 있는가에 의문이 든다.
 
교인은 믿음을 키워야 한다. 세력을 키우고 분당을 짓게 되면 교회는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가라지는 내어 쫓겨나게 된다. 때를 지어서 몰려다니면 안 된다. 그것이 힘으로 나타나면 문제가 된다. 조직폭력배가 되는 것이다.
 
빌라도는 진리를 모르고 백성들의 소리에 겁을 먹고 판결을 하여 믿는 자들 입에서 가장 악랄무도한 자로 불리고 있다.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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