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보시며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보시며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19:5)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는데 삭개오라는 자가 달려 나간다. 그는 세리장이며 부자였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돌감람나무 위에 올라갔다. 그 때에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보시며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19:5),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19:6)
 
예수 그리스도는 왜 삭개오의 집에서 하루 밤을 지내셨을까요? 그분을 사모하는 자, 보기를 원하는 자, 달려 나오는 자를 맞이하시기 때문이다.
 
사모한다는 것은 그분을 만나지 못하면 미칠 지경에 이르는 표현이다. 오직 그분 만에 나의 전부라는 것이다.
 
만일 그분께서 우리 동네에 오신다면 나는 삭개오처럼 달려 나가서 얼굴을 보기 위하여 맨 앞자리나 나무 위에 올라가는 열정이 있을까 생각하여 보아야 한다.
 
언제인지는 몰라도 믿음 생활은 적당히 거리를 두고 해야 한다는 것이 통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적당히 하라는 권면이 없다.
 
믿음 생활을 하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되면 지치거나 낙심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하면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도와 보호를 하시기 때문이다.
 
반면에 믿음 생활에 지치고 좌절하는 사람들은 사람의 생각으로 하였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자기의 욕심을 이루려 하는데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인한 실망과 좌절이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올 때에 삭개오처럼 나오셔야 합니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달려 나오고, 잘 보이며 잘 들리는 곳에 앉으셔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부르시는 찬양이 의지적 행함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입술의 고백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잠시 울리는 꽹과리 소리가 되는 것입니다.
찬양하신 것만큼 행함의 자리로 나가는 것이 진정한 신앙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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