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새 학기가 시작되면 학생들은 새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게 된다. 그런데 요즘 교복을 수선하는 곳은 대박이란다. 학생들이 학교가 정한 교복을 자기들의 마음대로 고치기 때문이다. 고치고자 하는 것은 우선 치마의 길이이다. 짧아도 너무 짧다. 미니스커트이다. 치마의 길이를 줄이는 것과 함께 치마폭도 좁혀진다. 주름이 있는 치마인데, 주름 잡힌 곳 없이 쫙 폈다.
 
남학생들도 예외는 아니다. 학생복 바지가 소위 쫄 바지로 바뀐다. 활동하는 데는 다소 불편하지만 핏(Fit)이 살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무늬만 학생복이지 스타일은 최신 유행을 따른 것이다.
 
학생복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나 많은 추억이 있다. 교복을 나팔바지로 통바지로 멋을 내었고, 빨리 어른이 되고픈 마음에 군복에 염색을 하여 입기도 하였다. 그래도 그 때는 지금보다는 덜 하였다. 치마의 길이는 줄이는 정도까지는 아니었고, 허리춤을 몇 번 접에서 길이를 줄였다.
 
학생의 진정한 멋은 학생복을 착용하였을 때이다. 단정함과 순수함이 풍겨 나온다. 학생이 멋있어 보이는 것은 순수함과 꿈이 있어서이다. 그런데 학창시절에는 이것을 모른다.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되었을 때에 지난날을 생각하면 부끄러운 기억이다. 순수하지 못하고 성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이다.
 
사람에게는 묘한 것이 있다. 하지 말라 하는 것은 더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는 것이다. 학생이 학교가 정한 규율을 지키는 것은 아름답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저들은 규율을 어기고 넘는 것이 멋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묘한 방법을 동원한다. 교복에 대한 복장 검사를 하자, 짧은 치마 밖으로 원래 교복 치마를 입고 등교를 하고, 그 후에는 다시 짧은 치마를 드러내고 있다.
 
법에 대한 묘한 반응이다. 교복이 치마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무늬와 색깔의 치마를 입으면 되는데, 그 무늬와 색깔은 유지하면서 변형을 시키겠다는 의도이다. 그 생각은 법을 지키려는 마음은 있는데, 학교가 정한 법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대로 지키겠다는 것이다.
 
음주 운전을 하지 말라 한다. 그러면 단속의 기준은 얼마만큼 인가를 묻는다. 그것은 기준치에 걸리지 않을 만큼만 마시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는 운전을 할 때에는 얼마만큼까지는 마셔도 된다가 된다.
 
주일성수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한 목적이다. 그런데 주일에 어디까지 허용이 되는가에 질문이 많다. 그러다보니 이것은 허용이 되고 저것은 안 된다로 싸움이 생겨서 교단까지 갈라졌다. 본질은 거룩하게 지키라 이다. 그런데 사람의 생각이 작용을 하여 복잡해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하여 안식일에는 너희 처소에서 나오지 말라 명령하셨다. 그런데 어디까지를 두고 전통법을 만들었다. 그래서 안식일을 지키는 법이 39개나 생겨났다. 하나님은 단지 너희 처소에서 나오지 말라한 것을 사람이 전통을 만든 것이다.
 
학생들의 교복은 학생들을 보호하는 옷이 된다. 학생이 학생복을 입으므로 인하여 자기 스스로를 보호하고 사회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다. 학생들이 교복을 벗고 성인들의 복장을 하고 술집이나 나이트를 들어가게 되면 위험 일이 생긴다. 아직 성숙하지 않으므로 인하여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힘이 없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미성숙하기 때문이다.
 
신자들 역시 신자다운 옷을 입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을 보호하고 보호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주라 시인을 하면 나도 그를 안다고 할 것이라 하셨다. 내 입으로 신자임을 밝히고 주를 향하여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한다.
 
신자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이다. 사람들이 신자를 신자답게 인정할 때가 선한 일을 할 때이다. 요즘 신자들은 학생들이 교복을 자기의 생각대로 고쳐서 입듯이, 자기의 생각대로 신앙을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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