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즐거운 함성 중에 올라가심이여 여호와께서 나팔 소리 중에 올라가시도다

 “하나님께서 즐거운 함성 중에 올라가심이여 여호와께서 나팔 소리 중에 올라가시도다”(시 47:5)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족장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가나안 땅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런데 그 땅을 야곱의 열 두 아들의 이름으로 차지하게 되는 영광을 얻는다. 그래서 본문에서 야곱의 영화로다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점령할 때에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친히 내려오셔서 여리고 성을 함락시킨다. 그뿐만 아니라 약속의 땅을 다 차지할 때까지 하시므로 이스라엘이 승리하게 되었다.


승리하신 후에 이제 하늘로 다시 올라가는 장면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손뼉을 치며 승리의 함성 중에 올라가신다.


시편 47편을 메시야 찬양의 시라 한다. 말씀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품안에 계시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 가셨다. 그렇다면 승리한 것이 있을 것이고 누가 승리의 함성을 지르며 손뼉을 쳐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있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승리하신 것은 불순종의 종들을 사로잡아서 십자가의 구원의 은혜를 주신 것이다. 그것에 대한 증거가 교회이다.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을 말한다.


그래서 교회는 그 증거를 나타내야 한다. 즉 죄에 대하여는 죽고 하나님 말씀 앞에 산 자로 있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능력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수아가 승리를 하기 위해서는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위해서는 무엇을 행하여야 할까요?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수 1:7),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야 합니다.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행하면 형통의 길을 가게 됩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 1:8)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전하여준 율법을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형통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그 택한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얻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실까요? 아들은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면 인도하심과 보호하심과 충만한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약속한 형통의 길입니다.

택한 백성들이 형통의 길을 가게 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실까요?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자로 세우기 위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요 15:16). 율법을 지키는 자가 아버지께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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