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자연의 이치는 때가 이르면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만일 이른 봄에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진다면 미쳤다는 표현을 쓰게 된다. 모든 이치가 과정 속에 결과가 나타나야 아름답다는 찬사를 듣게 된다. 가을에 나타나는 단풍과 낙엽이 아름다운 충분한 이유가 있다.
 
봄이 되면 나무에 꽃이 핀다. 그리고 나뭇잎이 나올 때가 되면 바람이 세차게 분다. 세찬 바람은 꽃잎을 떨어지게 하고 잎이 나오게 하기 위함이다. 나뭇잎이 펼쳐지게 되면 이제 열매를 맺는데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하거나 협력을 하게 된다. 또한 열매가 강렬한 태양을 피할 수 있도록 가려 주기도 한다.
 
마침내 열매를 결실하고 농부가 수확을 하면 나뭇잎은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몸의 색깔을 변화시키고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낙엽이 아름답고 멋진 이유이다. 긴 세월 속에 자신의 맡은 바 임무와 책임을 다하고 다시 본향으로 되돌아가는 아름다움이다.
 
인생의 연륜도 마찬가지이다. 시절을 따라 꽃을 피우고 잎을 내며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면 나이 값도 못한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사람들마다 이것에 대한 가치의 기준을 달리 정한다. 어떤 이들은 성공을 기준으로 심기도하고, 다른 이들은 인격이라 하기도 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선한 일을 하게 하기 위함이다. 여기에서 선한 것이란 도덕 윤리적인 것이 기준이 아니다. 성경에서의 선이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라 한다. 그러기에 선이란 하나님의 것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깐 사람이 선한 일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닮아서 같은 생각과 뜻으로 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깨닫고 사는 사람들이 별로 많지 않다. 그 이유는 선과 악에 대한 진리를 모르기 때문이다. 믿는 자들이 흔히 하는 말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회개의 기도를 드리는데 이, 삼분만 지나면 고백할 것이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선에 대한 기준이 나로부터 나오기에 별로 잘못한 것이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선과 악의 기준은 하나님의 것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것을 알면서 사는 것이 선한 일을 하며 사는 것이다.
 
과실나무가 열매를 맺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있다. 그런데 그 시간이 만만치 않은 시간들이다. 한 여름의 비바람이 치는 폭풍과 말라비틀어질 것 같은 강렬한 볕이다. 그 시간을 참고 견딘 것들이 탐스러운 열매이다. 우리는 자연의 이치를 살피다가 보면 하나님의 일하시는 법을 알 수가 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삶에서도 동일한 원리이다. 우리에게 시련과 고난을 주시는 이유는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이다. 만일 그 시련의 여름이란 세월을 없다면 그 해에 과일 농사는 망치고 만다. 모든 열매가 작고 볼품이 없게 된다. 그런데 여름철에 날이 무덥고 햇볕이 강렬하면 대풍을 맞게 된다.
 
요즘의 신앙인들은 혹독한 여름이 오는 것도 싫고, 강렬한 햇볕도 싫어한다. 그러면서도 좋은 열매, 많은 열매를 맺게 해 달라고 한다. 하나님이 정하신 법을 피해 갈 수는 없다. 하나님의 뜻대로 선하게 살면서 열매를 맺다가 주님 품으로 가야 한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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