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그 중 일부는 사두개인이요 다른 일부는 바리새인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

 “바울이 그 중 일부는 사두개인이요 다른 일부는 바리새인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행 23:6)


바울이 공회 앞에서 설교를 하게 되었다. 설교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그런데 사두개인은 모세오경만을 믿고 부활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바리새인은 부활이 있다고 믿는다.


부활의 주제를 꺼내자 사두개인과 바리새인 사이에 갈등이 생긴 것이다.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행 23:8)


이 다툼으로 인하여 바리새인들은 바울의 편을 들게 되었다. 이 장면을 본 천부장은 백성들의 고발에 의심을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바울을 보호하기 위하여 영내로 데리고 간다.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핵심이 된다. 바울은 만일 부활이 없는 믿음은 헛 것이라 하였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고전 15:17)


부활의 교리적인 의미는? 죄에 대하여는 죽고 하나님 앞에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롬 6:10)


하나님 앞에 서게 되거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사람의 생각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인함이다. 즉 부활의 은혜를 입은 자라면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은 자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령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삼게 됩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사람들이나 신비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령이 임하면 특별한 일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 2;10)

그래서 사도바울의 주장은 성령이 임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영광을 입은 자가 된다고 합니다.

“그가(성령)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요 16:14)

오늘 본문에서 바리새인에게나 사두개인에게 전하고 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뜻하심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그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당하는 핍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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