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우리의 자녀들이 학교를 가야 하는 이유는 한 인간을 고급스러운 인격체로 만들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채우고 훈련을 받기 위함이다. 그러나 지금 학교 공부를 하는 이유는 분명히 다르다. 왜냐하면 철밥통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옆에 있는 짝은 친구가 아니다. 같은 또래들은 전부 경쟁자이며 적군이 된다.
 
어떤 것에 대한 본질을 지킨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그런데 더 어려운 문제는 본질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오는 혼란이다. 그것이 바로 공교육은 더 이상 교육이 아니라며 사교육을 주장하는 자들이다. 본질이 무너짐으로 인하여 사교육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과 부모의 개인의 삶마저 포기하여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교회 역시도 치열한 경쟁의 사회 속에서 세속적인 것들이 들어 와서 일부의 교회는 변질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교회의 특징이 설교의 변질이다. 설교의 시간이 짧고 형식이 알맹이 보다 더 중요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설교의 내용도 목사가 추진하는 사업에 대한 설명회 시간으로 변하였거나 변명의 기회로 삼고 있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죄인들을 향하여 거룩함을 전하는 것이다. 설교가 변질이 되다가 보니 교회가 이상하게 되어 버렸다. 그래서 양복 입은 무당처럼 행하는 자가 있고, 복채를 받고 예언기도를 하는 자도 있고, 교인의 약점을 잡고 공갈협박을 하는 악한 교주들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자들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자들이다. 이제는 회개와 깨달음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교회의 본질이 무엇이며 어디로 향하여야 하는지를 말이다.
 
사람에게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사망이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사망을 피할 수 있는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은 자들이다. 이것은 하나님께 정하시고 약속하신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안다면 교회를 가는 이유와 목적이 분명하여 지는 것이다.
 
교회는 두 번째 사망의 진노를 피한 자들이 모이는 곳이며, 그리스도를 구세주라고 고백하는 자들이 모이는 곳이다. 그러니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하는 것이 당연함을 진리로 믿는다. 그런데 이것 외에 다른 것을 전하면 다른 교훈이 된다. 그렇다면 그것은 이단이 되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학교를 왜 가냐고 물음과 같이 교회를 왜 가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교회의 본질과 상관이 없는 것으로 대답이 된다면 참으로 곤란한 일이다. 성령께서 탄식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죄인들을 위하여 세상으로 보내셨다. 하나님의 말씀도 역시 죄인들을 향한 거룩한 외침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인들은 자신들을 죄인이라 부르는 것을 아주, 아주 싫어한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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