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에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


 세상의 학부모들은 자식들에게 공부하라고 달달 볶는다. 그렇게 하는 이유를 물으면 당연하게 자식을 위한 것이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거기에는 부모의 욕심과 욕망이 담겨져 있다. 부모에게는 자신이 정한 때가 있는데, 그 때가 되면 자식에게 더 이상 신경쓰지 않고 나만의 나대로의 삶을 살기 위한 욕심이다. 더 쉽게 말하면 캥거루족이나 빨대족의 자식을 두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욕심을 가진 부모들의 자녀들은 행복하지 않다. 이미 지난 세월을 살아온 부모들로서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를 잘 알고 있다. 오로지 성공만이 출세만이 생존경쟁에서 살길이라는 것이다. 이 경쟁의 시작이 출신대학의 졸업장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명문대학에 입학은 경쟁사회를 향한 첫발을 내딛는 걸음이 된다. 그래서 공부를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녀들이 부모의 생각이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다가 보니 청소년을 둔 가정에서는 늘 긴장과 갈등의 연속선상에 있다. 그러나 부모들의 생각처럼 공부를 잘 했던 사람만이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사람을 만드신 창조주가 어떤 생각과 목적으로 사람을 만들었는가를 깨달으면 된다. 처음 창조되었던 사람은 선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선하게 창조되었다. 그래서 선한 일을 하도록 만들어졌다.
 
선한 것이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으로 이웃에게 선행을 하라는 것이다. 즉 나로 인하여 이웃이 복을 받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죄로 타락한 세상은 경쟁의 사회가 되었다. 경쟁이라는 의미를 살펴보면 상대를 죽여야 내가 승리하는 구조이다.
 
그리스도인의 부모는 자녀들에게 십자가의 도를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잘 할 수 있는 재능을 주셨다. 이것을 달란트라고 한다. 사람은 각 자가 갖고 있는 재능을 나타낼 때는 기쁨과 즐거움을 느낀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함으로 내가 기쁘고 남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세상, 사회가 된다면 경쟁이나 싸움이 없어질 것이다. 이 비밀을 배우고 맛볼 수 있는 곳이 교회이다. 교회는 만물 위에 세상의 모든 가치 위에 세워졌다.
 
그런데 어설픈 종교 지도자들이 이 경쟁에서 자신이 모시는 신이 힘을 준다고 하며 돈벌이 하는 자들이 있다. 더군다나 교회에서 말이다. 목사는 한 술 더 떠든다. 모르는 문제를 찍을 때에도 성령께서 함께 해 주신다고 외치고 있다.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재능을 주셨는데, 그것을 이웃에게 악하게 사용을 하면 악인이 되는 것이고, 교묘하게 속이면 악덕 업자가 되는 것이다. 각 사람에게 주신 재능으로 선한 일을 하며 이웃을 섬기게 될 때에 진정한 평화가 임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원리는 우리의 가정과 교회에 적용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곳은 경쟁을 하는 곳이 아니라 사랑으로 용서와 화합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여야 가정이 행복해 지고 평화스럽다는 존재하기 않는데 부모의 욕심으로 만든 욕심의 허상이며 허무이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에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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