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전쟁하게 하시는도다
구약의 말씀을 읽다가 보면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전쟁을 하였다. 가나안에 들어가면 젖과 꿀이 흐른다고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곳에 들어가 가만히 앉아서 젖과 꿀을 먹은 것이 아니라, 먼저 그 땅에 살고 있는 일곱 부족을 쫓아내는 일을 하였고, 이방민족의 침략을 방어하는 전쟁을 수없이 하였다. 이것은 우리가 단순히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역사적인 사실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가나안과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가나안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또한 구원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면 천국이 보장되어 있다. 그래서 신자들은 모두 천국에 갈 것을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천국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다윗은 수 없이 많은 전쟁을 치루었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바울도 엄청난 고생을 하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면 모든 것이 만사형통하고 매일 기쁨의 생수가 흘러나온다고 한다. 또한 기도를 열심히 하면 다 이루어진다고 한다.
다윗과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기도를 안 해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다. 그들은 분명히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자들이다. 또한 기도도 열심히 하였다. 그런데 그들에게 왜 고통과 근심의 나날이 지속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가나안은 전쟁이 없고 만일 전쟁이 나면 하나님이 다 막아주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다윗은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있다. 분명히 위험이 있고 적군의 화살이 날아오고 있다. 또한 이방나라와 전쟁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많이 죽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으면 고난과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실은 신자들의 삶이 더 피곤하고 고단하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전쟁과 환난 속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보호하심과 인도하심과 구원하심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의 믿음에 더 확신을 갖게 한다. 그러므로 인하여 다윗이 고백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나의 방패이시며, 산성이시라고 찬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와 구원을 확인시켜 주심으로 인하여 우리는 더 큰 전쟁과 싸움터로 나갈 수 있게 된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사자의 굴에서, 풀무불에서 지켜주셨던 하나님을 기억하며 찬양을 한다. 누구누구의 믿음과 신앙을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체험케 하시는 것이다.
다윗과 바울 그리고 다니엘과 세 친구들에게도 믿음의 선조들에게 약속하신 은혜가 임하였다. 그 약속이 우리에게도 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환난과 고난을 통하여 우리를 단련시킨다. 즉 내게 구원의 은혜가 임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나의 반석이신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전쟁하게 하시는도다”(시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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