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몇 일 전에 스승의 날이 있었고 내일은 스승의 주일이다. 노랫말에도 있듯이 '스승의 은혜는 하는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라고 불렀었다. 그런데 교사의 권위가 실추가 되어 말이 아니다. 세상이 많이 바뀌면서 변한 것이 많다. 그렇다할지라도 교사들이 그 자리를 본연의 자세로 지키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일부의 교사들은 학문의 내용을 가르치고 전수하여야 하는데, 돈벌이로 생각을 하여 돈에 양심을 팔아 모든 교사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 잘못된 교사들의 부정적인 면만을 보고 자란 어린이들은 또 다시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성경 말씀에 심은 대로 거둔다는 법칙이 있다. 이것이 농부에게만 적용되는 법칙이 아니라, 모든 이치에 적용이 된다고 한다. 참된 스승 밑에서 훌륭한 제자들이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학교는 참된 선생이 많은 곳이다. 학문을 가르쳐 깨우치게 하는 것이다.
지상의 교회들은 교회 학교 또는 주일학교가 있다. 주일학교와 세상의 학교와는 교육의 내용이 다르다. 교회학교는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로 만들어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 즉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곳이다.
지금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출세와 성공가도를 달리기 위한 교육이다. 주변에 있는 급우와 친구들이 모두 경쟁자들이다. 이러한 구도 속에 친구의 관계가 형성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늘 이기적이다. 나만 잘되면 된다. 이기적인 분위기에서 공부한 사람이 출세를 하면 금방 이웃에 선을 행하는 자로 바뀌냐는 것이다.
나의 출세를 위하고 나의 돈벌이에 목적을 두고 의사가 된 자들이 많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의 생명을 담보로 잡고 파업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의사가 되면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자들이다.
1948년 제네바 선언이다.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음에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나의 은사에게 대하여 존경과 감사를 드리겠노라.
나의 양심과 품위를 가지고 의술을 베풀겠노라.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나는 환자가 나에게 알려준 모든 것에 대하여 비밀을 지키겠노라.
나는 의업의 고귀한 전통과 명예를 유지하겠노라.
나는 동업자를 형제처럼 여기겠노라.
나는 인종, 종교, 국적, 정당관계 또는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
나는 인간의 생명을 그 수태된 때로부터 더 없이 존중하겠노라.
나는 비록 위협을 당할 지라도 나의 지식을 안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노라.
나는 자유의사로서 나의 명예를 걸고 위의 서약을 하노라.
손을 들고 서약은 하였지만 의사의 본분이 무엇인지, 사명과 책임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자들이다.
주일학교의 교육은 좋은 것을 함께 하는 것이다. 좋은 것이 무엇인가? 우리의 생명이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롭게 되어 생명과 의로움과 거룩함을 공급받게 된다. 그리고 이웃을 위하여 헌신하며 봉사하는 자리로 가게 한다.
기독교의 교육은 속성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봄에 씨를 뿌리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돼서야 열매를 얻듯이 시간을 요한다. 즉 긴 시간동안 사랑과 관심으로 돌봐야 한다. 그래서 가르치는 자들에게 권면을 하고 있다. 낙심도 하지 말고 포기도 하지 말고 기다리다가 때가 되면 열매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의 밥벌이는 지름길 속성으로 이룰 수 방법이 있지만,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는 일에는 과정과 시간을 요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하여 교회의 지도자들이 오래 참으며 가르쳐야 한다. 교회 안에 선생 된 자들에게 인내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