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그리스도인이 믿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리를 알아야 한다. 교리를 모른다는 것은 마치 몸에 뼈가 없는 것과 같다. 홀로 서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고 활동도 못하여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기도의 생활은 특권이며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간구와 책임의 한계를 모르고 생각없이 기도하는 자들이 너무 많다. 그리스도인은 구원을 얻으므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여야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옛사람을 벗어 버리는 일이다. 악한 욕심으로 인한 추한 것들을 말한다. 성경의 진술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창조된 자들에게는 이러한 것들을 버릴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았다는 것은 죄가 무엇인지를 알았다는 것이다.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깨달았다. 그렇다면 이제는 죄에 대하여 종노릇하는 것에 대한 무서움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라 의의 종으로 나가야 함을 깨달았다. 이 문제를 알고 깨닫게 하기 위하여 교회에 목사와 교사를 허락하셨다.
 
옛사람의 못된 습성을 새롭게 된 자가 버려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기도로 해결하려는 자들이 있다. 자기의 마음을 다스려 달라는 것이다. 이러한 기도가 아주 고급한 믿음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만일 그렇다면 사도들은 교회들에게 서신서를 보내지 않았어도 될 일이 된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을 기도로 해결하라고 쓰여 보낸 적이 없다. 사도들은 지속적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와 교회에게 전하고 있다. 악한 동무를 사귀지 말라, 악한 욕심으로 생각하지 말라, 유혹에 흔들리지 말라,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라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먼저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자칭 기도의 사람이라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기를 게을리 한다. 아니 오히려 자기가 꾼 꿈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
 
기독교의 진리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속이는 것으로 비취일 수밖에 없다. 저들은 중생의 은혜를 받지 못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진리의 말씀이 논리적으로 논증을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잘못된 행실을 하면서도 뻔뻔함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옛사람의 행실을 아직도 하면서도 새롭게 지음 받은 자로서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옛사람의 행실을 하면서도 주여! 주여! 하고 있다.
 
이렇게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으로 전하는 자가 된다. 3계명에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하셨다. 이 말씀은 거짓으로 일컫지 말라는 것이다. 기독교는 진리의 말씀을 삶으로 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전과 이후가 분명히 다르다. 그러므로 악한 욕심을 따라 사귀었던 동무들을 내어 버릴 수 있게 된다. 이제는 의의 종이 되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4;22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