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에는 하나님이 요구하신 것과 사람의 생각에 의한 것이 있다. 성경적인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진술한다. 즉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약속하시고 행하시는 것을 믿는 것을 말한다.
 
사람의 생각으로 신에게 나아가는 것을 종교심이라 한다. 자연의 이치나 인간의 생과 운명이 초월자에게 있다는 것을 앎으로 시작이 된다.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방법이 어떠하냐에 따라 무속신앙과 종교로 나누어진다.
 
무속신앙은 정성과 치성으로 빈다면, 종교는 신에게 나아가는 의식이 있다. 의식을 통하여 신을 만날 수 있다는 인간의 마음을 종교심이라 한다. 그러니 우상의 형상을 띠고 있는 종교는 다 인간의 욕심과 종교심에 의하여 생겨난 것이 된다.
 
소위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자들에게도 종교심으로 믿는 자들이 있다. 자기만의 정한 방법이나 욕심과 욕망을 이루려 나오는 자들이다. 이러한 행위는 결코 하나님에게 인정받을 수가 없다. 그래서 특히 이방신을 섬기던 자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있다.
 
사람은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없고, 깨달음은 물론이고, 알 수도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하여 화목할 수 있고, 만날 수 있고, 깨달을 수가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선생이 되는 것이다. 즉 선생의 가르침을 받아야 만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거룩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도덕과 윤리를 잘 지키는 자들의 고급함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크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들은 하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고 실천하는 자들을 말한다. 즉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어떻게 임하였으며,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알고 그 사랑을 그대로 실천하는 자들을 말한다. 그러니 이 땅에 거룩한 자가 많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흥왕하여 짐으로 인하여 평안이 임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다. 자기의 사랑하는 외아들을 주신 사랑이다. 그리고 그의 아들은 우리들을 위하여 자신을 버리신 사랑이다. 우리에게 조건과 이유를 요구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친백성을 삼으셨다. 그리고 세상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며 살기를 바라신다. 이것이 우리를 택하신 이유이다.
 
그런데 종교심으로 하나님께 나간 자는 이러한 하나님을 아는 믿음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거룩함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세상이 자랑하는 욕심과 욕망을 자기의 방법으로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온다. 이러한 믿음을 가진 자들이 자칭 기독교인이라 하여 교회가 욕을 당하고 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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