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시 15:4)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원하시는 도덕 윤리의 기준은 십계명이다. 십계명은 모든 사람들이 지켜야할 보편적인 도덕법이다.


만일 십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부정하는 것이고, 이웃과의 관계에서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된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는 나 중심적인 것이 아니라 이웃이 중심이 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이방인들도 자기들의 형제를 사랑한다고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 백성은 강도 당한 자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약속한 것은 손해를 보더라도 지키라 한다. 


이웃과의 약속을 나 중심적으로 함부로 어겨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언제나 이웃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것에 대한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찾아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심 같이 도움이 필요한 자를 찾아서 섬겨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은 이미 한 해 동안 만나기로 한 약속 날짜가 잡혀있다. 예배 시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약속이다. 


하나님과의 약속도 내가 바쁘다고 내가 중심이 되어 취소해서는 안 되며,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손해를 보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함을 반드시 기억하여야 한다.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정하신 약속의 법칙은 내가 손해를 당하더라도 지켜야 함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사람을 창조하시고 서로 도우며 살게 하셨는데 그것에 기준은 나의 상황을 따라서 결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웃이 중심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서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눅 10:36-37)

강도 당한 자의 이웃은 선한 사마리아 인이며 자비를 베푼 사람이라 하였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내가 기준이 되어 이웃의 한계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을 당한 사람이 기준이 되어 이웃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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