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기독교의 교리와 윤리의 실종으로 인하여 이제는 평신도의 도덕적 타락은 더 이상 화제 거리가 아니다. 지금은 단연코 목사들의 행실이 그 대상이다. 잊을만하면 한 건씩 터지곤 한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말도 많음은 물론이고 해악을 끼치고 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든 문제를 성경적인 방법으로 풀어야 한다. 격언에 반신반의라는 말이 있다. 그 뜻은 한편으로는 믿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불신하는 것을 말한다. 목사들의 도덕 및 윤리적인 타락이 있으면 두 편으로 갈라선다. 비방하는 쪽이 있고, 옹호하는 쪽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진리를 지키되 죄를 용서하는 입장을 취하여야 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잣대가 되어 진리는 외치되 사랑을 베풀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판단하는 나도 그와 같은 죄를 지을 수 있는 연약한 육체를 가졌기 때문이다.
 
신학적인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서신서를 보면 바른 교훈과 다른 교훈이 있다. 이미 초대 교회에도 다른 교훈을 들고 가르치고 외치는 자들이 있었다. 왜 서신서에서 이단에 대한 경계와 부활의 능력을 강조하는가 생각해보아야 한다.
 
세상이라는 곳은 사탄이 공중권세를 잡고 있다. 왜 이곳에 예수님이 사람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을 하셔야 했는가, 깊이 생각하여야 한다. 성경은 끊임없이 사망의 능력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어떤 사람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시므로 인하여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사망과 지옥과 사탄을 모두 정복한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과 연합의 교리로 인하여 더 이상 마귀에게 종노릇하지 않게 되었다. 이것은 좋은 소식, 복음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신 것이다. 생명을 공급하여 주시고 기쁨을 충만케 주시는 은혜이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삶을 통하여 복음이 주는 능력과 기쁨을 알 수 있다. 그는 몸이 아프고 고통 가운데 있었지만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임한다고 하였다.
 
어느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기쁨이었다. 그래서 그는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다메섹 성에서 들창문을 타고 도망하였던 것을 자랑하고 있다. 이것이 복음 맡은 자의 사명이며 기쁨이다. 목사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에 대하여 말들이 많다. 그들이 진정 바른 교훈을 전하고 기쁨을 누리고 있었는가, 오히려 반문을 하여야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의 신앙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가 사망과 절망과 낙심으로 안내하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세상이 있다. 영적인 눈이 있는 자만이 볼 수 있는 천국이 있다. 그러므로 주님이 계신 곳을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 자이다. 그러니 하나님이 부르는 날까지 하나님의 능력을 전하고 외쳐야 한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힌 몸이 되어 복음을 전할 수 없게 되자 차디찬 감옥에서 교회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다. 마지막까지도 바른 교훈을 전하려고 힘썼던 바울의 삶이었다.
 
이와 같은 삶의 교훈은 목사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왜 그런가하면 하나님은 그와 같은 목적을 가지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각으로 스스로 선 줄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가장 교만한 것이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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