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지금 이 땅 위에 천박한(얇고 어설픈 지식) 기독교인들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고 있다. 하나님을 알고 있는 수준이 마귀들이 알고 있는 수준이다. “눈 앞에 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마귀이다. 마귀는 하나님이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심과 죄의 책임에 대한 심판이 있음을 모르는 자들이다.
 
천박한 자들의 특징이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없이 가볍게 외친다는 것이다. 성경적인 영광은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과 경건의 두려움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광이 나타나면 본인뿐만 아니라 주위의 모든 사람도 알아 볼 수 있다.
 
그런데 천박한 자들은 오히려 교만의 자리로 나아간다. 정죄와 심판을 한다. 옳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바른 소리하다가 오히려 상처를 받기도 한다. 이러한 자들이 교회 안에 가득하니 분쟁이 그칠 날이 없다.
 
천박한 자들은 성령충만과 카타르시스, 자아도취를 구분하지 못한다. 성령 충만을 받으면 인격이 변한다. 새로운 찬양의 시를 지어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의 자리로 나아감은 물론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 반면에 카타르시스라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위로 또는 안도감을 갖게 하는 것이고, 속에 있는 응어리 진 것들을 밖으로 토해냄으로 오는 시원한 기분이다.
 
또한 자아도취가 있다. 스스로 자기 잘난 맛에 빠져서 흥에 겨운 것이다. 소위 믿음이 세다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이다. 주변에 나 말고 더 믿음이 큰 자가 없다고 할 때에 나타나는 교만이다. 그렇다면 천박한 기독교인들이 무엇을 들고 자랑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을 가는 야곱이 있다. 벧엘에서 여호와의 사자들을 만났다. 그의 고백은 이러했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야곱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두려움을 느꼈다.
 
모세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의 영광을 본 모세는 하나님의 얼굴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렸다고 하였다. 주님의 제자들도 그리하였다. 자신들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주님 물러가소서 하고 간청하였었다.
그런데 천박한 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도 경외함과 두려움을 느끼지 못한다.
 
기독교는 그동안 천박한 자들의 다른 교훈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늘 그랬듯이 이단과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자들의 극성과 열심은 대단하였다. 그러다보니 많은 기독교인들이 천박한 자들의 가르침을 받다가 보니 가타르시스와 자아도취가 성령충만인 것처럼 알고 있다.
 
성령충만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한다. 안다는 것은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통해서이다. 그 분이 나를 알고 나도 그 분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천박한 자는 자기가 알고 있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알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천박한 자들은 카타르시스, 자아도취에 흠뻑 젖어서 그러한 가르침을 전하는 자들을 찾아다니고 있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2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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