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철학은? 세계와 인간과 사물과 현상의 가치와 궁극적인 뜻에 목적을 둔 사람의 생각이다. 이것이 오늘날 발전된 것으로 심리학 상담학 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자가 없었던 때에도 사람들은 이러한 문제로 고민을 하였다고 한다.
 
서점에서 인기가 있는 책들이 인문학에 관학 것들이다. 무슨 내용이 담겨져 있는가 하면, 주제는 이러하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이것은 인류가 가지고 있었던 고민이었고, 지금도 이 문제도 고민을 하고 있다.
 
오늘날 이 문제가 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가? 도덕과 윤리가 실종이 되어 브레이크가 파열된 기차가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는 사회에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부모와 형제, 자식까지도 죽이는 사회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는 성경의 말씀 속에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모세의 시에서 인생이 강건하면 칠, 팔십을 사는데 고작하는 일이라곤 하나님을 분노케 하는 일만 한다고 증언하고 있다.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였던 자들이 어떠한 사람들이었느냐 하면,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자들을 자유인으로 만들어 주었고 날마다 일용한 양식을 주었고, 추위에 떨지 않고 더위에 지치지 않게 해주었다. 그런데도 구원자를 배반하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또 다른 지도자를 세웠었다.
 
그런데 인류의 시조인 아담에게서 태어난 자들은 다 같다는 것이다.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죄의 부패된 성품을 가지고 있으면 아무리 좋은 방법이 있어도 목적을 이룰 수 없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를 한다.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를 자주 내려 주셔서 은혜 가운데서 하나님이 계심을 깨닫게 해 달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마음이 부패한 사람들에게 품안에 계시던 독생자 아들을 보내 주셨다. 그 이유는 부패한 성품을 가지고 있는 자들의 마음을 새롭게 고치기 위함이다. 아예 고치시고 마음 안에 거주하시기로 하였다. 이것이 중생의 역사이다. 거듭남의 은혜이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새로운 피조물이라 하였다.
 
거듭났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은 내 안에 주인이 바뀌었다는 것이 된다. 그래서 이제 내가 육체로 살고 있지만 나를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살리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자의 특징은 죄를 지으면 마음이 불편하게 된다. 그런데 주인의 명령과 분부를 거슬리면서도 찜찜한 것이 없다면 심각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을 하여야 하고, 그분의 능력으로 죽으면 천국을 가게 된다. 그리스도인은 내가 나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나를 고민하여야 한다.
 
인문학자들에 의하여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궁극적으로는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 앞까지 이르는 은혜가 역사하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인간의 생각인 철학이 교회에 들어오게 되면 그것은 다른 교훈이 된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 이외에는 다른 진리가 없다. 그리고 마귀가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 애굽에서 먹었던 것으로 유혹을 한다. 오늘날 교회에도 옛날에 먹고 즐겼던 그것으로 슬며시 들어오고 있다. 그래서 교회 안에는 분별력이 있는 신자가 많아야 건강한 교회이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교회가 살아 숨쉬는 교회이다.
 
교회의 양 떼들을 먹이고 지키는 자가 목사이다. 그러다보니 모든 면에서 경계를 하여야 한다. 이미 인간의 철학인 상담학과 심리학이 교회에 들어와서 용서와 치유라는 제목으로 흔들어 놓았다. 그리고 이제는 인간의 능력과 존재, 존엄이라는 제목으로 들어올 것이다. 이것 또한 경계를 하여야 한다.
 
사도 바울은 이 분야에서 이미 많은 학문을 섭렵한 사람이었다. 그의 고백을 자세히 보아야 한다. 그것을 초등학문이라 하였고,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한 지식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 외에 것은 다 배설물로 여긴다는 것이다.
 
교회와 목사들은 신뢰를 잃었고, 교회 안에도 분란이 있다. 어쩌면 좋으랴 그래도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여 오늘도 외치고,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외쳐야 한다.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딤전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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