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우리가 일상에서 아주 쉽게 많이 대하는 철학자는 누구인가? 화폐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천원의 화폐에는 퇴계, 오천 원 권에는 율곡이다. 이 두 사람은 조선시대 때에 성리학자들이었다. 그렇다면 화폐 속에 인물의 얼굴을 넣었을까 하는 문제이다. 그 이유는 우리가 다 아는 데로 그들의 참 업적은 높이면서, 참 뜻을 기억하면서, 삶에 적용을 하자는 것이다.
 
그들이 주장하였던 것은 관념적인 세계에서 벗어나 현실의 세계에서 민생의 문제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여 모두가 다 행복하게 살자는데 목적을 두었다. 우리가 그토록 좋아하는 돈에 그와 같은 철학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하실 때에도 로마 나라의 동전에는 황제의 얼굴을 새기었다. 이것은 숭배사상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인두세라는 것을 바치게 하였다. 즉 사람의 머리수를 세고 세금을 걷은 것이다. 받친다는 의미가 더 크다. 이 세금을 받치는 이유는 나의 생명이 황제에게 있다는 뜻이 된다.
 
예수님도 이 문제에 직면하신 적이 있다. 못된 바리새인들이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게 하려고 질문을 하였다. 저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러 오신 예수님을 기만하는 행위였다. 즉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면 로마황제에게 바치는 인두세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 때에 예수님의 대답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다.
 
그런데 우리들의 마음에는 왠지 찜찜한 것이 있다. 예수님이 왜 그렇게 하셨는가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는 것이다. 확 하늘에서 불을 내리셔서 저들을 놀라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이다. 나라를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 나라의 심판은 주님이 다시 오시는 재림의 날에 이루어진다.
 
또 하나의 의문은, 예수님께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 세상의 나라도 하나님께 속하여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각 나라의 권세자들도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세워진다는 것이 성경의 진술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각 나라의 권세자들에게 선과 악에 대한 권세를 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착한 일을 한 자들에게는 포상을 하고, 살인하고 악을 행한 자에게는 사형을 집행하게 하고 교도소를 보내게 하는 권세를 부여하셨다. 하나님은 악한 자가 늘어나지 못하게 또는 범죄를 억제하게 하는 권세를 주었다는 말이 된다.
 
요즘 세상에서는 사람이 사람의 도리를 하지 못하고 사니깐 철학자들의 책과 강의에 관심이 아주 많다. 성인이 되라고 한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지식으로 많은 것을 깨닫고 현실의 어려운 문제와 고통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을 가진 자라는 뜻이 된다. 그런데 그 속에 많은 변론이 있다. 그리고 그들끼리 다투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세상을 이기고 헤쳐 나갈 힘이 있다. 그 근원은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이 우리와 함께 계심으로 인하여 아골 골짜기도 담대하게 갈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이론이나 관념이 아니다. 현실에서 아골 골짜기를 가봐야 체험할 수 있는 은혜이다.
 
지금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여야 할 것은, 믿음의 삶이 너무 관념적인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바람이나 기도의 내용을 보면 거친 광야로 가지도 말게 하시고 폭풍도 바람도 불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 하나님의 능력을 맛 볼 것인가?
 
인기 강사들의 강의가 지식으로 깨우치고 그것을 힘으로 삼아 세상을 도전하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그 부분에서 확신을 가지고 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것을 지키기만 네가 가는 곳마다 그리고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신다고 하셨다.
 
세상 사람들도 인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위하여 화폐에 위인의 얼굴을 새기어 넣었다. 하물며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얼굴을 날마다 바라보지 않고 산다면 깊이 반성을 하여야 한다. 주님의 얼굴을 본다 함은 그분이 하신 말씀을 살피라는 것이다. 그래야 세상의 변론에서 이길 수 있으며 피할 수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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