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우리말에 오두방정을 떨다라는 말이 있다. 침착하지 못하고 몹시 가볍고 점잖지 못한 말이나 행동을 할 때에 쓴다. 그렇다면 이 말의 의미는 아직 마음의 생각이 정하여지지 않았다는 상태를 말한다. 요즘 TV에 인기절정인 한 철학자가 과거에 내 뱉은 말로 인하여 비판을 받고 있다.
 
고대 그리스로부터 시작된 인문학은 인간과 인간의 문화에 관심을 갖는 학문이다. 요즘 인문학 강의가 인기가 있다. 그 이유는 인간과 인간성을 생각하여 정치와 경제, 역사를 세워 가자는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정신적인 측면을 연구하여 인간의 생각으로 가장 현명한 생각과 판단을 하기 위함이다.
 
고대시대 당시에도 젊은이들을 깨워서 사회에 대하여 능동적인 자세를 갖게 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의 외침은 늘 웅변적이었고 선동적이었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알아야 할 것은 인문학은 신에 대한 학문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사상에 대한 학문이라는 것이다. 인문학자들의 고민이 이론은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움직이게 할 기운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철학자들이 고민하여 만든 것이 수사학이고 웅변이다. 그러다보니 내용은 뻔한데 감정으로 호소하는 대화법이다.
 
그들의 강의를 듣다가 보면 괜히 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결국은 분노가 마음을 움직이게 하여 행동에 이르게 한다. 그런데 이 방법은 우리가 이미 친숙하게 이웃에게, 친구들에게 사용하였던 방법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의 마음은 요동을 친다. 분노가 치민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이러한 자들이 너무나 많다. 이러한 것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심히 경계하여야 한다.
 
진리는 그 말씀 자체에 힘이 있다. 그래서 감정으로 호소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은 매주 마다 목사를 대하게 된다. 그런데 목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방식이 다름을 볼 수 있다. 지적인 면을 강조하는 목사가 있고, 감정을 호소하는 목사가 있고, 개그맨처럼 웃기는 목사가 있다.
 
초대교회에도 이 문제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었다. 설교의 말씀을 전하는 방식이 수사학과 웅변술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들의 서신서를 보면 다른 교훈에 대한 경계를 하고 있다. 저들의 가르침에는 족보와 신화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찬 것이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이 말씀을 외우기도 하고 또는 기억하고 있다. 여기에 더 깊이 묵상을 하여야 한다. 즉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 큰 소리로 전하거나, 작은 소리로 전하거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말씀 자체에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 목사들 사이에서 웃음을 자아내는 이야기가 있다. 설교시간에 교인들을 세 번 웃기고, 한 번 울리면 소위 대박친다고 한다. 그러면 교인들은 은혜를 받았다고 한다는 것이다. 성령 하나님이 근심하고 한탄할 일을 목사들이 앞장을 서고 있다.
 
목사들의 오두방정으로 인하여 설교와 교회가 변하고 있다. 마치 마음에 정한바가 없어 생각없이 철없이 말과 행동을 하고 있다. 진리의 말씀을 전하면 성령께서 역사하신다. 감성을 자극하는 웅변술이 필요없다. 정작 울어야 한다면, 죄의 고통으로 인한 불쌍할 때이다. 괜히 아무 때나 쓸데없이 울리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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