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타자의 무례함이 나를 용감하게 한다. 나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용기를 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무례함 앞에 비굴하게 침묵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용기를 내어 대항하여야 한다.
 
때로는 타자의 무례함이 나에게 분노를 내게 한다. , 전투력을 팽만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감정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된다.
 
사도 바울은 이성의 철학이 발달한 도시 아테네에서 우상 앞에서 어리석은 짓을 하는 자들을 보고 몹시 흥분하였다. 그의 안타까운 감정에서 나오는 이성으로 열심히 전도하였다.
 
그러나 철저한 실패를 맛보았다. 그는 아테네에서 철학자들과 냉철한 토론을 하였다. 시간이 지난 후에 그는 성령에 의지하지 않고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였던 것을 회개하였다.
 
오늘 하루를 살면서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대화를 하여야 한다.
 
예수님, 내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들은 것입니까? 내가 지금 본 것은 무엇입니까? 이 상황에서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이 기억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듣는 마음을 주시고 귀를 열어 달라고 기도하여야 한다.
 
그러면 감정의 폭풍 속에서 벗어난 후에 밀려오는 죄책감과 후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마귀는 나를 실족시키기 위하여 분노를 이용한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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