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로 내가 이 일이 그런 줄을 알거니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욥 9:2)

 “진실로 내가 이 일이 그런 줄을 알거니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욥 9:2)


빌닷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말하였다. 그러자 욥은 원론적인 신학에 동의하지만 그 거대한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겪는 실존적인 무력감과 두려움을 토로한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힘을 인정하지만 그것이 자신에게는 공포와 절망으로 다가옴을 고백한다. “그는 마음이 지혜로우시고 힘이 강하시니 그를 거슬러 스스로 완악하게 행하고도 형통할 자가 누구이랴”(욥 9:4)


설령 자신이 의로울지라도 하나님께 대답할 수 없고 오히려 긍휼을 빌어야 할 뿐이라고 한탄을 한다. “가령 내가 의로울지라도 대답하지 못하겠고 나를 심판하실 그에게 간구할 뿐이며”(욥 9:15)


욥의 한탄과 탄식에는 개혁주의 구원론과 기독론의 핵심 주제가 강력하게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어떻게 의롭다 함을 받는 것과 판결자를 구하는 것이다.


인간이 의로워지는데 눈 녹은 물로 씻는다고 해서 정결한 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눈 녹은 물로 몸을 씻고 잿물로 손을 깨끗하게 할지라도”(욥 9:30)


이것은 인간의 전적인 타락을 인정하는 것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전해지는 하나님의 의가 필요함을 말한다. “진실로 내가 이 일이 그런 줄을 알거니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욥 9:2)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한계로 인하여 하나님의 숨겨진 뜻을 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간격을 메워줄 중재자가 있어야 함을 말한다. “우리 사이에 손을 얹을 판결자도 없구나”(욥 9:30)


이것은 신약에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는 한 분이시니 그리스도 예수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


욥은 깊은 절망에 빠져있다. 하나님의 위대하신 주권을 알기 위해서는 중보자가 필요함을 고백한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두려우십니까? 하나님에 대하여 알고 싶으십니까?

그것에 대한 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 자니라”(히 4:14)

즉 예수님이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서 손을 얹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보자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중보자를 통해서만 만나 주심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장용호 목사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마 16:19)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