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삼상 4:3)


여호와께서는 전쟁을 통하여 자신을 알게 하신다. “여호와께서 가나안의 모든 전쟁들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삿 3:1). 오늘 본문에서는 사람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음을 교훈한다.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전쟁을 하여 군사 사천 명 가량이 죽었다. 그러자 장로들이 모여서 패배의 원인을 살피고 대책을 세운 것이 전쟁터에 여호와의 법궤를 들고 가자는 것이다. 그래서 실로에 있는 법궤를 옮긴다. 그런데 전쟁에서 이길 줄로 알았는데 이번에는 삼만 명이 죽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법궤를 들고 나갔는데 전쟁에 패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반면에 블레셋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께서 블레셋 군사들과 함께 하였기 때문이다. “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면 대장부가 되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 같이 되지 말고 대장부 같이 되어 싸우라 하고”(삼상 4:9).


그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삼상 4:11).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음은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난 것을 말한다. “또 이르시기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였더라”(삼상 4:22)


본문의 전체 내용을 살피면 법궤를 빼앗겼다고 하여 여호와께서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블레셋 편을 드셨음을 알 수 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전하시고자 하는 말씀은 무엇인가?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의 생각으로 움직일 수 없고,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 없으시며,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하신다.


블레셋에 잡혀 가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고쳐야 함을 말한다. 그리고 법궤 안에 있는 언약의 말씀을 지켜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들고 다닌 것이 아니라 그 약속의 말씀을 행할 때에 능력이 나타남을 말한다.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은 스스로 계셔서 사람들의 것이 필요 없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출 3:14)

그리고 우리들의 생각으로 조종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들과 약속의 말씀 범위 안에서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리고 성경책은 가방이나 차 안에 두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따라 행하실 때에 우리와 함께 하심을 반드시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긴 칠 개월 동안 이스라엘에는 그의 영광이 떠났습니다.

이제 사무엘을 통하여 회개 운동이 이스라엘 전역에서 일어납니다.

금식하며 회개함으로 인하여 이스라엘백성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복원이 되는 것입니다.

‘회개 없이는 죄사함이 없고, 죄사함이 없이는 구원‘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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