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압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압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히 2:9)


히브리서는 로마 정권 압제 하에서 고난을 받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하는 서신이다. 유대인들은 다시 유대교로 돌아오라 하고, 신학적으로는 천사숭배 사상과 예수 그리스도를 비교하는 혼란 속에 있다.


본 장에서는 큰 구원은 성경 전체가 전하는 것이고, 왜 십자가의 고난의 길을 가야하는지에 대하여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여 해석하고 있다.


천사와 그리스도를 비교하는데 있어서 “그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히 2:7). 무슨 말씀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 일 동안 무덤에 계시는 동안을 말한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죽으셔야 했는가에 대한 질문이 생긴다. 그 십자가의 길을 지나야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고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아버지가 주신다.


이것에 대한 증거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로 가는 길에서 고난(괴로움과 어려움)과 수난(재판과 처형의 과정에서 당하는 정신적 육체적 아픔)을 당하시고 사망을 지나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


이것이 증거가 되어 이 땅에 있는 그리스도인들도 고난과 수난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죄인인 우리들을 위함이다. 그분의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였다.


이렇게 십자가에 죽으심은 천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잡아 주시기 위함이다.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히 2:16)


이뿐만 아니라 구원받은 자들의 맏형이 되셔서 형제들을 위하여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들의 죄를 속량하신다.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여 하심이라”(히 2:17)


이와 같은 진리의 말씀을 알아야 거짓 교사의 가르침에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히 2:1). 우리들의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 함께 하지 않는 것을 비유로 뿌리가 깊이 박히지 않은 나무가 홍수에 떠내려가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세상 유행을 따라 사는 사람은 자기의 중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남들이 입으니 나도 입어야 하는 것이 유행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의 믿음 생활을 하는 성도는 거짓 교사의 가르침이 따라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큰 구원이 성경 말씀 안에 있습니다.

만일 성경 외에 것을 가르치거나 전하게 되면 마귀의 거짓이 됩니다.

마귀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는데 교묘하게 거짓을 살짝 더하여 하나님에게 불순종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말씀을 밝히 알지 못하면 마귀에게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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