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하셨으니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하셨으니"(20:17)
 
유목민은 거주지를 옮겨 다닐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가축들의 먹이는 풀을 찾아야 다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랄 땅에 거주하게 되었다.
 
그곳에서도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를 데려갔다. 이 사건에도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사라를 돌려보내게 하신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건이 창12장에서도 애굽왕 바로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두 사건에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다른 의미가 있다.
 
애굽 왕 때에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일어났지만 블레셋 왕 아비멜렉 때에는 차이가 많다. 왜냐하면 이 사건의 해결의 키를 아브라함이 갖고 있다는 것이다.
 
무슨 말씀인가하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인하여 아비멜렉에게 내려진 저주가 풀린다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여호와께서 이왕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일로 아비멜렉의 집의 모든 태를 닫으셨음이더라"(20:18) 아베멜렉의 집의 모든 태를 닫으셨다.
 
그런데 이 문제를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하셨으니"(20:17) , 아브라함이 기도함으로 인하여 저주가 풀렸다.
 
창세기에서 장수가 넘어갈수록 아브라함의 믿음이 더 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브라함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이 되어 응답하여 주시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엘파소 열린문 장로교회 여러분!
아브라함의 믿음이 과정 과정을 통하여 성장하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믿음도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하여 커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고난과 핍박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고난과 환난의 고정을 통하여 믿음을 성장시키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대화하시는 인격적인 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고난의 짐을 들고 하나님 앞으로 나오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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