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요즘 신자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대하여 각기 다른 견해들을 가지고 있다. 즉 이 말은 자기의 생각대로 예배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양강좌 내지는 신앙 강좌로 생각을 한다. 그러다보니 감동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자기가 동의하는 내용은 인정하지만, 듣기에 거북하고 인정하기 싫은 것은 거부한다. 그리고 설교를 평가하는 자리에까지 이른 자들도 있다.
구약의 제사법은 하나님과 화목을 위하여,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약속을 확인하기 위하여 제정된 것이다. 그래서 제사를 드리러 갈 때에는 제물을 가지고 갔다. 그러니 제사를 드리려면 죄와 함께 제물을 가지고 가야 한다.
신자들이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준비하고 나가야 할 것이 있다. 죄와 예물과 말씀에 대한 확인이다. 그런데 요즘 신자들은 하나님 앞에 나오는데 죄를 들고 오지 않는다. 그 이유는 죄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세상에 살면서 무슨 죄를 지었냐고 오히려 항변을 한다. 자기는 의롭고 깨끗한 자라 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는데, 알고도 짓는 죄가 있고, 몰라서 짓는 죄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모르면서 짓는 죄는 죄가 아니라 생각한다. 우리의 현실은 하나님을 몰라서 짓는 죄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전혀 죄의식이 없다. 그러니 늘 하나님 앞에서 당당하다. 내가 세상 일로 바빠서 성경공부나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지 않으려 하는 죄가 무서운 것이다. 이스라엘의 패망이 여기에 있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 않아서 자기들 마음대로 믿다가 멸망을 자초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다 안고 생각하였다. 더 나가 자기들의 생각이나 하나님의 생각이 동일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생각은 하늘과 땅이 먼 것 같이 다르다.
믿는 자들이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 하나님을 몰라서 짓는 죄에 대한 무서움이다. 우리들의 생각에는 심판의 날에 몰랐다고 하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미 많은 목사들로부터 믿음의 비밀이 선포되었다. 그러니 벌써 들어본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앞에서는 모른다가 통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하나님에 대하여 모르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신다. 구약에서는 많은 선지자를 보내어 주셨고, 신약시대에서는 사도들을 통하여, 성경을 통하여, 각 지역에 목사들을 보내어 외치게 하셨다.
성경에서는 게으름을 죄라고 하였다.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하나님을 아는 일을 경홀히 한 것이 죄가 된다. 그런데 이것이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더 무서운 죄이다. 그렇다면 하나님 보다 세상이 더 무서운 것이 된다.
신자들은 모르고 짓는 죄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하나님을 알게 되면 지난날에 모르고 지은 죄가 생각이 나게 된다. 매주 새로운 깨달음이 있다면 죄에 대한 고백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번 주에도 죄에 대한 고백이 없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깨달음이 없었다는 것이 된다.
요즘 신자들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려 나가는데도 죄도 들고 가지 않고, 심지어 예물도 들고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인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교회는 신앙 강좌나 교양과목을 강의하는 곳이 아니다. 하나님과 화목을 위함이고, 죄 용서를 구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약속을 확인하는 곳이다. 이것을 아직도 모른다면 당신은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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