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여호와께 드리는 예물이 새의 번제이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로 예물을 드릴 것이요
불경기로 인하여 모든 사람들이 어려움과 불편을 겪는 가운데 교회들도 같은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 기독교 언론들이 전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다른 종교들을 성장하고 있다. 반면에 기독교는 오히려 감소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십여 년 후에는 현재의 기독교인 숫자가 반 정도로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나나난 현상이었는데 근래에 들어서는 급격히 나타나는 현상인 것이다.
그 동안 기독교는 진리 안에서 세상이 주는 물질의 축복을 전하며, 잘 사는 방법을 터득하며, 재수나 운이 따르는 방법을 소개한 반면에, 오히려 다른 종교는 사람이 어떻게 하면 선하게 살고 어떻게 하면 고급한 인격을 소유할 수 있을까에 관심을 두고 교육을 하여서 사회생활이나 직장 생활에서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도 더 우월함을 보이고 있다.
기독교에서 구원을 얻었다 함은 죄에게 종노릇하던 상황에서 이제는 자유함을 얻어서 더 이상 죄와는 상관이 없으며 영생을 소유한 자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자가 되었다는 것인데, 어떤 곳에서는 값없이 받은 은혜를 다시 되갚아야 한다고 하며 물질을 바쳐야 한다는 다른 교훈이 등장한 것이다.
그래서 거두어들인 헌금으로 교회 건물을 크게 짓고, 기도원에, 수양관에, 묘지, 등을 구입하는데 투자를 하고 세월을 보냈다. 이런 것들로 인하여 오히려 교회 안에서는 재산 다툼이 일어나고 부자 세습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경기가 어렵게 되자 교회도 교인들에게 자꾸 강요하기도 눈치가 보이고, 교인들 또한 헌금을 드리는 문제에 있어서 신경이 쓰인다. 교회는 목표를 세워 놓고 예산을 맞추기 위하여 획일적인 방법이나, 일괄적인 방법을 택하고 있어서, 말은 자유롭게 하라고 하지만 사실은 반 강제적이다. 이런 방법은 이미 사회적으로나 교회 안에서도 지탄을 받고 있지만, 아직도 행하여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또한 헌금을 거두는 방법이나, 재정의 투명성 부족으로 인하여 기독교는 사회적으로나 신자들에게 신뢰를 잃었다.
구약의 말씀에서는 하나님 앞에 나와 드리는 제물을 드리는 사람의 형편에 따라서 드리도록 하였는데, 부자들은 커다란 소로, 중간층에 있는 사람은 양이나 염소로 드리게 하였으며, 또 아주 가난한 자들은 비둘기로도 드릴 수 있게 정하셨다. 하나님은 일괄적으로 제사의 제물의 크기를 정하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형편에 따라서 드리게 하였다. 이것은 먼저 드리는 자가 하나님 앞에서 생각을 하고 결정을 하게 하신 것이다. 만일 부요한 자가 소를 제물로 드리지 않고, 양이나 비둘기로 제물을 드리면 제사를 열납하지 않으셨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나오는데 있어서 경제적인 것은 방해를 받지 않았으며 그 사람의 형편에 따라 자유롭게 나와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었다. 오늘날의 교회들도 교인에게 지나치게 분수에 넘치는 헌금을 강요한다든가 경쟁심을 유발시키어 헌금에 참여하게 하는 것은 금하여야 한다.
교회가 불경기를 맞이하여 당하고 있는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법은 교회 재정의 투명성과 올바르고 합당한 헌금 생활을 가르치고 성경의 말씀대로 전하여야 한다.
헌금은 하나님의 약속하심이 내게 임한 것을 알고 형편과 분수에 맞게 감사함으로 드리는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리라. 만일 여호와께 드리는 예물이 새의 번제이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로 예물을 드릴 것이요”(레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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