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한국은 1970년대에 경제발전과 함께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우리민족의 고유한 전통들을 무시한 적이 있었는데, 요즘에 와서는 우리민족의 고유한 것이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라 하여 다시 복원을 하며 옛 것을 배우는 일에 열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것은 다른 문물들을 경험하여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한국 전통의 것이 어울리며 우리의 체질에 맞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자들이 섬기는 교회에서도 세상의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이어 교회가 성장하고, 교인의 숫자가 늘면 최고라고 하여, 온갖 종류의 행사와 심지어 연예인까지 동원을 하여 사인을 해 주었던 일들이 있었으며, 또한 교회의 행정력과 동원력을 과시하기 위하여 총동원 주일을 정하여, 모였던 숫자를 지금까지도 자랑을 하고 있다. 이렇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백화점 세일기간에 많은 사람이 오게 하기 위하여 기념품이나 선물을 주었던 것을 방법으로 사용하여, 교회에 와서 등록을 하면 프라이드 팬이나 주방 용품을 선물로 주는 것이 유행을 하여 교회마다 경쟁적으로 홍보를 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하였던 것들로 인하여 지금은 오히려 교회의 정체성을 나타내는데 혼란을 초래하고 만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사건으로 인한 공로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인간의 영혼 구원의 가치를 희석시키는 엄청난 일을 하였다. 하나님의 풍부하고 부요한 은혜를 주방용품 하나와 맞바꾸는 기독교의 가치를 희석시키는 일을 자초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한 영혼을 구하시기 위하여 인간의 낮은 자의 모습으로 겸손함으로 찾아 오셨으며, 몸이 찢기며 피를 흘리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다. 겸손하신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신 것이다. 그래서 성경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겸손한 마음을 배우라고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무례하지 않다.
무례함으로 인하여 기독교는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타종교인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를 하며 처음 보는 사람에게 사랑을 한다고 하며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꺼리 끼지 않는다. 그래서 한 밤 중에도 무례함으로 전화 심방을 하며 휴식과 수면을 방해하며 또 다른 남자의 아내를 자매라 부르며 거리감이 없는 무례함으로 예의를 지키지 못하는 모습은 누가 보아도 이해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무례한 사람들이 모여 있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것도 수단과 방법으로 사용하는 곳이라면 어느 누가 그곳에 가겠습니까? 이러한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여지고 있다는 것이며, 그런데 더 문제인 것은 이렇게 무례한 사람들이 누구에게도 간섭을 받지 않으려고 또 하나의 교회를 세운다는 것이다.
이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의 주인은 자기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이지만,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이 세상의 주인은 삼위의 하나님이고, 그 분들이 이 세상을 주관하신다고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인데, 만일 그 교회에 하나님이 안 계시고 하나님이 지시한 뜻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곳은 하나님이 안 계신 곳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계신 교회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행하며, 하나님을 믿음으로 우리의 의지가 순종으로 나타낸다. 지금 많은 신학자나 목사님들이 교회에 위기가 왔다고 하는데, 아직도 세속적인 방법을 찾고 있어서, 세미나니 프로그램을 개발하려 하며 찾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가장 좋은 길은 다시 말씀 앞에 앉아서 귀를 기울이고, 무릎을 꿇어야 할 것이다.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딤전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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