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TV에서 사회의 이슈가 되는 문제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여서 토론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기독교계를 대표하여 나온 사람들의 의견에서 다소 편향적이고 이해심이 부족하며 이기적이고 고집만 센 사람들로 비취어지고 대화의 내용에서도 빈약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다보니 기독교인들이 있어야 할 자리와 지위와 역할을 타 종교인들이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과 이웃에 대해서는 할 말을 못하면서 기독교의 모임이나 기독교에 관련된 사이트에 들어가면 난리가 아니다.
 
기독교 신자라 하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와 지위와 역할을 인식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권세, 지위, 역할의 사명을 주셨기 때문에 세상 사람과 이웃에게 관대하며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자가 된 것이다.
 
우리는 사망의 권세를 깨트린 부활의 권세를 받은 자요, 모든 입들이 주라고 시인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라고 믿고 있는 자이며, 또한 그 이름은 만왕의 왕이 되시며, 지금 이 시간에도 역사의 흐름을 주관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분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지금도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시며, 어떠한 일을 하시는지, 세상의 끝은 어디인지 새 하늘과 새 땅은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는, 이미 문제의 정답을 알고 있기에 관대하며 사랑을 베풀 수가 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들이 깨달은 것을 말하고 있지만, 우리는 말씀으로 계시한 것을 통하여 약속하신 것을 알고 믿는 것이 근거가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하늘에 계신 하나님으로 믿고 있는데,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나의 하나님'이란 고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삶 속의 체험과 경험을 한 자만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을 할 수 있다. 다윗은 고난을 거친 후에야 나의 하나님이라 고백을 하며, 하나님은 나의 산성이요, 피할 바위이며, 요새라고 찬양을 하였고,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하나님을 앎으로 자기들의 생명도 아끼지 않았다.
 
다윗이 경험한 것은 어떠한 전쟁의 전략가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 앞에서는 당할 수가 없다는 것으로,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여 주시는데 큰 바위 뒤에 숨음과 같이 안전하였다는 것이다. 고난과 환난 속에서 경험한 자만이 이 같은 찬양을 할 수 있듯이, 우리도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나의 삶 속에서 나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을 찬양하여야 하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 고백은 지금의 나의 마음의 생각과 성품을 보여 주는 것이며, 신앙의 내용도 추상적이지 않고 현실의 삶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삶의 방향 목적으로 성품으로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이 기독교의 신앙이다.
 
그래서 기독교의 믿음은 획일적이지 않다. 각 자의 처지와 모양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바리새인들도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믿고 있었지만, 그들의 삶과 성품 속에는 하나님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래서 고린도 전서 13장에서는 천사의 말을 하여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아무리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지식이 많다고 하더라도 삶과 성품에서 나타나지 않으면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착한 행실로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면 하나님에게 기쁨이 된다. TV토론에 나가서 말을 잘하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TV토론에 나가기 전까지의 삶이 어떠하였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그가 그와 같은 삶을 살지도 않으면서 하는 말을 소리 나는 꽹과리와 같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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