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침과 저녁에 기온이 떨어지는 것으로 봐서는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 것 같다. 특히 올 해의 여름은 무척 길게 느껴진다. 긴 가뭄과 태풍과 홍수로 인한 물난리에 미국에서는 산불로 인한 아픔이다. 자연의 냉엄, 냉정, 냉혹을 깨달을 수 있었다. 자연의 이변현상이라 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연을 다스리기 위한 방법 가운데 정하여진 것이다.
모험과 도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경험으로 하는 말이 있다. 그곳에서 가장 쉽게 편하게 사는 방법이 그곳의 환경에 맞추어 사는 것이라고 한다. 즉 인간은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자연의 힘을 바꿀 수 없다는 결론이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이 정하신 법을 대항하려는 부패한 마음이 있다. 그래서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다가 혹은 자연을 거슬리다가 목숨을 잃는 경우가 있다. 자연의 재해를 당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자연의 냉엄, 냉정, 냉혹을 가볍게 여기다가 변을 당하는 것이다. 삽 한자루를 들고 논을 지키려 하고 끈을 붙잡고 비닐하우스를 지키겠다는 어리석음이다.
땅을 빌려서 사는 인간들은 땅을 만드신 주인이 정한 방법대로 살아야함을 알아야 한다. 창조주가 정하신 질서의 방법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혜인 것이다.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미련한 인간들은 지혜를 모르고 있다. 그래서 저들은 갈 길을 몰라서 방황을 하고 있다.
어두움 가운데 있는 인간들에게 지혜를 알게 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빛으로 보내셨다. 그리고 빛으로 어두움을 물러가게 하시고 길을 밝혀 주셨다. 그리고 하늘에 하나님이 계심을 알게 하신 것이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알므로 자연의 섭리의 세계를 알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땅 위에 있는 가장 높은 산을 정복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 유익이 없다. 가장 높은 산을 오르려 하는 이유는 자기의 영예를 나타내려 함이다. 사람들이 인정하는 영예를 얻고 싶어서 도전을 하는 것이다. 허무한 피조물에게 도전을 하다가 목숨을 잃으면 얻는 것이 허무함뿐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위하여 목숨을 일는 자에게는 영생의 면류관과 상급을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태풍을 일으켜 바다 밑 바닥을 청소하신다. 그러므로 프랑크톤이 더 많아지고 바다 밑에 사는 고기들에게는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함이고, 또한 대기 중에 있는 더러운 공기를 깨끗한 것으로 바꾸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것 가운데 허튼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것을 우리의 생각으로 비판을 하고 바꾸려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교만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창조의 질서를 따라서 사는 것이 지혜이며,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며 어떻게 하시려 하는 것을 아는 것이 복이다. 이것을 알게 하는 것이 구원의 은혜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인데 하나님의 뜻으로 사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말면 미래가 보이고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관용의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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