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세상에는 다양한 직업이 있다.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두 종류로 나누면 창작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하나는 비평을 하는 사람들이다. 창작은 글을 쓰는 것이라면, 비평은 창작된 글을 분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묘한 것이 비평을 하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창작을 하지 않는다. 반면에 글을 쓰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글을 비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에도 두 종류의 신자들이 있다. 열심히 봉사하는 일꾼들이 있고, 반면에 일은 안 하고 다른 신자들을 비판하는 신자들이다. 교회 안에 공동체에서는 서로 협력하여 봉사의 일을 한다. 그래서 찬양대도 하고, 안내도 서고, 식당 봉사도 한다.
 
교역자들이 모든 신자들에게 교회에서 봉사와 충성을 부탁한다. 어떤 사람들은 정중히 거부한다. 부담을 주지 말라는 것이다. 더 나아 만일 부담을 부면 교회를 옮기겠다고 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자기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아서 할 수 없다고 한다.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의 봉사가 있지만 찬양대에서 일어나는 일로 참 말이 많다. 그중에 하나가 예배 시에 드렸던 찬양이야기이다. 모두가 다 음악 평론가이다. 음악은 전공도 안 했지만, 악보도 앍을 줄도 모르지만 비평이 시작된다. 곡 선정이 어떠했고, 지휘자의 폼이 좋았느니, 누가 잘하고 누가 틀 린 것을 거침없이 말한다.
 
그래서 듣는 사람 가운데 핀잔을 주는 말로 그러면 찬양대를 하시면 어떻겠냐고 하면, 자기는 무대 체질이 아니라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이 말은 비평은 잘 하지만 창작을 할 수 있는 실력은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작하는 신자를 좋아 하신다. 그리고 비평하는 신자는 싫어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든지 한 마음과 한 입이 되는 것을 원하신다.
 
신자가 찬양대의 찬양을 비평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찬양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중 모두가 한 마음으로 한 입으로 화답을 하여야 한다. 만일 찬양에 대하여 평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잘못 된 것이다. 그 이유는 회중을 대상으로 발표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배 중에 드리는 찬양대의 찬양은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이다. 하나님만이 받으시는 것이다. 그러니 찬양에 대하여 이러 쿵, 저러 쿵 비평하는 것은 예배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자이다.
 
찬양대의 음악 실력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찬양하는 자의 마음과 생명과 힘을 보신다. 음정이나 박자가 틀려도 괜찮다. 그러나 마음과 정성과 온 힘을 다하여 드려야 한다. 진정한 실력자는 찬양대가 드리는 진심과 열심히 한 것으로 비평을 한다.
 
참 신자는 비평의 자리에서 관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참여하는 봉사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음악에 실력이 없으면 쓰레기통을 비는 일을 하여도 되고, 주차장 파킹 안내를 해도 된다. 전 교인 모두가 비평의 자리가 아닌 창작에 참여 하는 교회가 건강하고 활동적인 교회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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