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 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한 동안 열린 예배라 하는 것이 유행을 하여서 강대상도 치우고 그 동안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예배의 형식마저도 없애 버리는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하였던 이유는 교회에 처음 오거나 새로운 신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배의 모든 것을 바꾸기 시작을 하였고, 새 신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예배 중간에 연극공연도 하였고, 설교자도 청중과 가까워지기 위하여 단상 아래로 내려와 말씀을 전하곤 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오늘날에 와서는 그들의 주장이 서서히 힘을 잃어가는 것 같은데, 그들의 발상은 새신자의 수준에 맞추어 놓으면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올 것이라는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사람들을 앞세우고 홍보를 하였다. 홍보를 위하여 앞자리에 섰던 사람들이 대중에게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믿음이 성숙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오히려 부작용이 발생하였고 또한 도덕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되었었다. 교회의 성장과 부흥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음으로 인하여 교회는 신실함과 거룩성을 잃어버리기 시작하였으며 또한 이런 아이디어를 낸 목회자의 권위도 실추를 하며, 사회적으로도 인정을 받지 못함으로 공인의 자리에서도 물러나게 되었다.
 
이렇게 교회와 목회자가 권위와 순수성을 잃어버리자, 이제는 세속적인 교회들이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기독교는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 안에 있어서 믿음과 순종을 강조하는 것인데, 세속적인 교회는 하나님 중심이 아닌 인간이 중심이 되어서 사람이 행각대로 사람이 하고 싶은 대로 하였다. 저들은 하나님의 말씀 보다는 인간의 가능성과 잠재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셨기 때문에 인간 안에는 신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을 발견하고 개발을 하면 유능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다.
 
기독교가 전통적으로 이어온 예배의 형식에는 내용과 가치가 있다.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때에 제물을 각을 떠서 제사단에 올려놓고, 제물을 태우기 위하여 불을 지필 때에 사용하던 불은 반드시 하나님이 주셨던 불을 사용하여야 했다. 그러나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이 지시하지 않은 불을 담아다가 분향을 하였다. 하나님의 법을 어기자 하나님께서는 불을 내셔서 하나님 앞에서 죽었던 일이 있었는데, 하나님의 명령이 아닌, 인간의 생각으로 제사를 드리려 하였던 것이 원인이었다.
 
제사장들이 하던 일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이 주신 불을 꺼지지 않게 지키는 일이다. 제사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며, 하나님이 중심이 되며, 나의 삶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마음의 진정한 고백인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 중심이 아닌, 모인 자들이 주인이 되고 모인 자들의 축제가 되는 그러한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라고 할 수가 없다. 그것은 인간 중심으로 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중심으로 드리는 예배에는 형식과 예식이 있어야 하는데, 그 형식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어야 한다.
 
무의미한 전통은 이어갈 필요가 없겠지만, 그러나 진리와 내용물이 담겨있는 전통은 힘을 다하여 지켜야 한다. 이것이 믿음의 전통이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 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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