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마 5: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마 5:39)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다 나은 의가 무엇인가? 그것은 이웃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은 이웃 사랑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런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을 수는 없는 것이다.

더 나아가 오른편 뺨을 맞으면 외편도 돌여대라고 한다. 이것을 문자적으로 이해를 하여 그대로 행하면 더 큰 일이 일어난다. 즉 분노하여 반항하는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해를 하여야 하는가? 참고 기다리라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 심판권이 나에게는 없고 하나님께 있음을 알게 한다.

즉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가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으로 자신이 심판을 하거나 보복하지 않아도 됨을 말한다.

그리고 자녀가 되어 아버지가 무엇을 하시는지를 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마지막 날에 진노의 심판이 있음을 지각함에서 나오는 여유이다.

이와 같은 지식의 믿음이 있으면 이웃을 경쟁의 관계가 아니라 사랑의 대상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우리는 이웃을 심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사랑을 받은 자가 되어 용서와 사랑을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분노하는 자 앞에서 맞서서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참으로 들어 주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나은 의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경쟁과 보복으로 이웃을 대하는 곳이 아니라 사랑과 용서와 섬김으로 기다림으로 함께 합니다.
이러한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라는 깨달음이 있어야 됩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
즉 사랑이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는 반드시 사랑을 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 4:11)
이러한 사랑을 믿음으로 깨달았을 때에 관용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알므로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롬 12:14)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만이 원수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장용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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