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기독교의 신앙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하신 것을 근거로 하여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마치 안개 속을 헤치며 다니는 알 수 없는 묘한 말을 한다든가, 이상한 비유와 은유를 동원하여 표현을 하는 것은 성경적이라 할 수 없다.
 
다른 복음은 말씀을 듣는 순간에는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황홀하고 처음 보는 것처럼 신비롭고 매력적이다. 그러나 말씀이 끝나고 현실의 삶으로 돌아오면 고통의 연속이다. 이들의 주장은 신자들은 황홀한삶을 살아야 하는데 우리의 정성부족으로 인하여 고통 가운데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날까지는 신자의 삶을 고통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이 고통은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을 이기고 난 후에 우리에게 오는 은혜이다. 죄와 사망의 법을 깨고 물리치며 거부하며 생기는 과정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과 성령의 법에 이끌려 가면서도 우리 안에는 갈등과 고통이 있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거룩을 싫어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자기들의 육체의 즐거움을 빼앗는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육체의 즐거움을 절제할 수 있는 실력이 없기에 결국은 퇴폐와 파멸의 길로 가는 것이다. 세상은 사람들을 도덕이나 윤리적으로 죄를 짓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법을 제정하여 사람들의 기초적인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였다.
 
허무한 인생은 주말이면 프로 경기에 빠져 광란의 밤을 보내며 술에 취하여 미친 사람처럼 된다. 이것이 젊음이고 인생의 참 멋이라고 외치고 있다. 그런데 광적인 것이 지나치면 공공기물을 파괴하거나 사람에게 피해를 입혀서 경찰서로 연행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매일 뉴스를 통하여 접할 수 있는 기사이다.
 
이러한 것들이 죄와 사망의 법 아래에 붙잡혀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과 성령의 법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를 짓눌렀던 죄의 무서움을 아는 자들이 된 것이다. 이 죄는 우리에게는 너무 친숙한 것들이다. 이러한 것들을 거부하며 물리치는데 때로는 실패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 자체가 실패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키시고 구원의 완성을 향하여 이끌고 가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오히려 우리에게는 유익이 된다. 우리의 연약한 모습을 보게 되면서, 연약한 인간에게 임하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찬양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이 신약성경 서신서의 말씀인데, 거짓교사들은 구원을 얻으면 뜬구름 속에서 꿈을 꾸며 산다고 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법과 세상의 법은 서로 대치하는 상황에 있어서, 하나님의 법으로 세상에서 살 때에는 당연히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세상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것이다. 세상이 우리를 향하여 불화살을 쏘는데 그 불화살을 맞으면 우리의 마음은 화염에 휩싸여서 분노와 성냄과 저주의 말을 쏟아내게 된다.
 
신앙이 성장한다는 것은 불화살을 막아내는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다. 누가 무슨 말을 해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며, 또한 상처도 받지 않는다. 그런데 이 상처를 치유하여야 한다며 호들갑을 떠는 자들이 있다. 이 자들의 주장은 과거에 이와 같은 큰 상처가 있어서 이런 말을 들으면 아픔이 생긴다고 주장하는 자들로서 치유의 방법은 맨 처음 그와 같은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여야 한다며 그 사람을 먼저 용서하라고 한다.
 
인간인 내가 어떠한 존재인지를 안다면 나 역시도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자라는 것이다. 상담학의 시작은 나 중심으로 시작이 된다. 문제는 나는 괜찮은데 남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라 한다. 그러나 성경은 인류의 모든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인간답게 선을 행하며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함을 받아야 한다. 그 형상으로 회복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인류를 구원하시는 것이다.
 
부활의 신앙에 참예한 자들은 그 몸 안에 보배를 소유한 자 이지만,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는 육체의 질고를 당하기도 하며 아픔을 겪기도 한다. 그래서 겉 사람은 낡아지지만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 것이다.
 
초대교회 당시의 신자들은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겪었다. 만일 그들이 겪었던 고통이 지금의 신자들에게 온다면 난리가 날 것이다. 그 당시의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하신 명확한 말씀을 믿고 의지하며 기다렸다. 오늘날도 분명한 성경적인 믿음인 교리를 포함한 말씀의 전파가 시행되어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하신 말씀이 근거가 되어야 한다.
 
이방 종교의 특징은 명확한 약속이 없는 뜬 구름 잡는 소리를 하며 안개 속을 헤매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눈 깜고 침 흘리며 감정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눈 뜨고 말씀을 눈으로 보고 듣고 확인하며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이 믿음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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